
인류의 역사에서 수백 년마다 한번씩 발생하는 급격한 전환의 시기를 피터 드러커는 ‘역사의 경계’라 명명했다. 우리는 지금 싫든 좋든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의한 지식기반경제로의 급격한 변화, 즉 새로운 전환의 시대인 ‘역사의 경계’를 건너가고 있다.
대학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역사의 경계선에서 변화에 몸부림치고 있다. 대학간 통폐합, 국립대 법인화, 학과퇴출제도 도입, 교수업적 평가 강화 등 대학에도 시장경제적인 요소가 도입되면서 찬반의견이 분분하지만 우리 사회체계를 구성하는 핵심 주체로서 대학도 언제까지나 상아탑 속에 안주할 수는 없을 것이고,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물결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세계 경쟁력 평가에서 대학경쟁력이 OECD 국가 중 하위권을 맴도는 데서 알 수 있듯 국내 대학교육의 효율성은 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고학력자의 실업률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 반면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기술인력은 부족한 구조적 모순, 즉 대학이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인력양성에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참여정부에서는 신(新)산학협력 모델의 개발과 적용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에 따라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는 산학협력단이 설치·운영되고 있다. 산학협력 실적을 교수업적평가에 반영하도록 규정을 개정하고 산업계 출신의 유능한 인재가 대학교수로 채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산학협력 관련 각종 제도들은 도입 초기의 혼선과 운영의 미숙함을 벗어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기본 틀을 구축해 나가고 있으며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상태에 와 있다. 또한 대학이 기업에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실질적인 산학협력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체계구축과 상호신뢰의 토대가 쌓여 가고 있다.
선진기술을 보유한 국가만이 생존하는 무한 기술경쟁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선진 각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산학협력체계 구축에 의한 고급인력 양성과 기술개발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미래의 국가경쟁력이 ‘교육개혁’에서 좌우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인재강국을 위한 교육투자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핀란드와 스웨덴, 대학교육의 경쟁력강화를 핵심적인 국가발전전략으로 제시한 프랑스와 영국, NSF(과학재단) 및 주정부를 중심으로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을 위해 긴밀한 산학협력 체계 구축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 등은 구체적인 사례이다.
새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의 방향은 ‘세계적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 사업’, 포뮬러 펀딩으로 대표되는 ‘우수인력양성 교육역량강화사업’, ‘대학과 출연(연) 공동연구 사업’ 등 연구중심으로 대학 지원의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정책의 근저에는 시장의 원리에 입각해 선택과 집중으로 각 대학간 통폐합을 가속화시키고 대학의 구조조정을 강력히 유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대학 신입생의 급격한 감소 추세로 인해 대학의 통폐합과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대학이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으로 거듭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5% 이내의 핵심 연구인력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제도 도입과 정책추진보다 대학의 다양한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 즉 지역과 대학의 특성을 기반으로 자율적인 대학특성화를 추진하게 함으로써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만이 아니라, 세계 수준의 교육중심 또는 산학중심 등의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정부정책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교육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정책추진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백년대계는 세우지 못할지라도 5년 단위로 새로운 정부가 선출될 때마다 철저한 분석이나 사전준비 없이 과거정부에서 시행된 정책을 무시하거나 바꿔버리면 정부정책의 신뢰성 상실뿐 아니라 현장에서의 혼란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제 겨우 도입된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걸음마 단계를 겨우 벗어나기 시작한 대학에서의 산학협력 부분을 정부정책에서 어떻게 다루어 나가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정차근 / 호서대 교수(시스템제어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