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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인정하되 아시아적 가치 공유
[정정호 중앙대 교수] 베이징 국제 학술대회를 다녀와서
중국 내 반한 감정의 실체는 무엇이고 한중 양국의 소통 강화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일까? 지난 10~1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비교문학학회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정정호 중앙대 교수(영문학)의 기고를 싣는다. 정 교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지난 6~9일 주최한 아시아 인문학자 대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아시아적 소통의 문제를 고민해왔다. <편집자주>

지난 10월 6일부터 9일까지 중앙대에서 한국학술진흥재단 주최로 개최된 제1회 아시아 인문학자 대회의 목표는 ‘아시아에서의 인문가치와 인문학’이었다. 필자는 초기에는 아시아적 인문학 담론의 창출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그래서 기대도 컸다.

그러나 대회가 진행될수록 그러한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단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대화도 예상보다 생산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3국의 문화교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갈 길이 멀다고 느꼈다.

이러한 생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비교문학학회가 주최한 전국대회 및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필자의 관심은 동아시아 3국간의 진정한 대화 가능성과 생산적인 문화교류에 있었다. 특히 최근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감지되기 시작한 한중 관계의 이상기류가 커다란 관심사였다.

이번 비교문학 학술대회의 표어는 ‘다원화 문화교류시대의 문학의 대화’였다. 요즈음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말이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跨文化; Cross-cultural) 문화상호 간의 대화이다. 그렇다면 한류(韓流)에 열광했던 중국인들이 요즈음 혐한증(嫌韓症)을 앓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혐한증은 한국인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거부감정이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 이래 이 감정은 최근에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은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과 연계된 88 서울올림픽, 2002 월드컵 개최 등에 대해 한국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개발도상국가에서 선진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한국을 벤치마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동시에 시기심이 없었을 리 없다. 이것은 일종의 애증병존적 관계이다. 더욱이 많은 투자회사들과 관광객들이 중국에 대거 몰려가는 과정에서 일부 한국인들의 오만방자함에 대해 중국인들이 내심으로 섭섭하였을 것이다.

서울에서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봉송될 때 한중 학생들 간의 마찰, 쓰촨성 대지진 때의 인터넷에서의 악플, 강릉단오제 원류문제, 조선인 한자 창제설 등도 혐한증을 더욱 악화시켰다. 올림픽 기간 중에도 한국경기는 중계방송을 하지 않았고, 중국응원단을 대거 투입해 한국선수들의 경기를 방해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10월 5일자 <중국한인회보>(제22호)는 지난 9월 6일 <중앙일보>의 ‘겸따마다’운동 기사와 더불어 중국인들의 혐한증을 특집기사로 다뤘다. “중국거주 한인 80만 ‘반한감정 넘기’ 캠페인”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의하면 2008년 9월 4일 다렌에서 개최된 재중한인회 지역회장단 모임에서 ‘겸따마다’(謙虛和溫情) 운동본부를 만들어 결의문을 채택하여 한중관계 발전과 한국인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인들과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혐한증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베이징 중국 비교문학대회에서 만난 중국인과 한국인 몇 사람에게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1) 베이징 어웬(語言) 대학원생인 장모씨는 중국인들의 혐한증에 대해 말을 건네자 중국 내 일부 재중 한국인들과 일부 관광객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중국의 언론보도 내용과 비슷하게 한국인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그렇다고 그 자신도 한국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려할만한 사태로 파악하고 있었다.

(2) 베이징에서 유학 온 아이들과 함께 2년 이상 살고 있다는 한국인 김모씨는 간혹 중국인들이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한국인들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말하면서 걱정하고 있었다. 김씨는 우리 한국인들이 많이 반성하고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3) 베이징 대학을 방문하였을 때 교정에서 만났던 중국인 탄씨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건넸으나 내가 찾아가고자 했던 영문학과 사무실까지 직접 바래다주면서 그 다음날 한국인들도 참석하는 베이징 외국인 모임에 참석을 권유하는 등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녀에게서는 반한감정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4) 한국에서 1년간 수학했고 현대에서 근무하는 중국인 이모씨는 회사 내에서 얼마 전에 혐한증에 대한 앙케이트 조사가 있었다면서 혐한증의 실체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태를 양비론적인 입장에서 중국과 한국을 모두 비판했다. 그녀의 말이 재미있다. “중국인들은 큰 것은 작은 것으로 만들고 작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한국인은 작은 일을 큰 일로 만들고 없는 일을 있는 일로 만든다.” 아직도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확실치 않지만, 양측이 모두 상대방에 대해 지나치게 무시하거나 침소봉대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10월 10일부터 15일까지 6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방문객이었던 필자는 혐한론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불쾌한 경험은 없었다. 대부분의 보통 중국인들은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의 표어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었다. 스포츠를 통해 모든 나라들이 하나의 세계가 되고, 국가 간 평화유지와 인류공영이라는 하나의 꿈은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세계의 주체는 누구이며 하나의 꿈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 하면서도 중국이 중심이라는 하나의 세계는 또 다른 패권주의에 다름 아니고, 서로 다름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같은 것만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된다.

<논어>에 나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만이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이루는 것일 것이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 허울 좋은 장식윤리의 구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동(同)이 아니라 화(和)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화가 이루어지면 동은 저절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진정한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는 중국인들 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명심해야 하고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일본인들도 동의해야 할 문제이다.

/정정호 중앙대 교수(영문학)
권형진 기자 (jinny@unn.net) | 입력 : 08-10-20 오후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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