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교수들, ‘재단 횡포’에 반발
총장 선출방식 바꿔 일방적 공지 … 사실상 ‘임명제’
교수들의 총추위 참여 줄이고 후보추천 규정도 없애
각 대학들의 총장 선출 제도가 급변하고 있다. 총장이 학교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축으로 부상, 대학들이 가장 역량있는 리더를 가려 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다 나은 총장 선출방식을 모색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재단과 학내 구성원들이 서로 간 의견차로 갈등을 빚는 일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이화여대에서도 총장 선출방식을 놓고 재단과 교수들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재단 마음대로 총장 선출하겠다?”
지난달 30일 이화여대 교수협의회에 의하면 최근 재단측은 교수들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총장 선출방식을 변경해 내부 인터넷 사이트 등에 공지했다. 협의 과정이 없었던 것도 문제지만 현재 교수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재단이 내놓은 차기 총장 선출방식이 실질적으로 ‘재단 임명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재단이 제시한 총장 선출방식은 표면적으로는 총장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가 3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재단이 이 중 1명을 총장으로 선임하는 ‘간선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배용 현 총장 때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선 재단은 지난 2006년 이 총장 선출 당시, 교수 73명·직원 2명 등 총 75명이었던 총추위 구성·규모를 교수 14명·법인 추천자 7명·직원 2명·동창 2명 등 총 25명으로 변경했다. 또 최소 10명의 교원에게 추천받아야 후보 지원이 가능했던 기존 규정도 변경, 추천 없이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등 교수들의 총장 선출 참여를 극도로 제한했다. 변경된 방식을 따를 경우 총장 선출 과정에서 교수들이 행사할 수 있었던 실질적인 영향력은 없어지고 재단의 힘은 대폭 강화된다.
이와 관련, 교수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발표하고 “이 총장 선출 때는 총추위에 법인 추천위원이 없었으나 변경 후에는 25명 중 7명을 차지한다. 총장 선출 전 과정에서 재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재단이 새롭게 제시한 총장 선출방식은 표면적으로는 간선제 형식을 취하지만 임명제와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고 반발했다.
이어 교수협의회는 “투표를 통해 대학구성원의 의사가 표현되는 직선제와 달리, 간선제에서는 추천인 수가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통로다. 그럼에도 재단은 차기 총장 선출에서 전임교수의 추천을 받지 않은 사람도 후보자가 될 수 있도록 규정했다”며 “현재와 같은 총추위 구성·규모에서는 대학구성원의 지지를 일체 받지 못한 인사가 총장 후보는 물론, 총장으로까지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사회과학대 한 교수는 “우리 대학 총장 선출 시 교수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던 부분은 후보 추천·총추위 등이었다. 재단이 새롭게 내놓은 방식을 따르면 교수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모두 없어진다”며 “교수 위원 14명 전원에게 추천받아 1순위 후보가 되더라도 재단이 다른 위원들이 추천한 2·3위 후보자를 총장으로 선임하면 그만이지 않느냐. 결국 재단이 멋대로 총장을 선임하기 위해 선출 방식을 바꿨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재단의 총추위 참여 말도 안 돼”
총추위 구성·규모 변경으로 총장 선출에 대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통로가 원천봉쇄된 만큼, 현재 이화여대 교수들은 “총추위에서 법인 추천위원을 없애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교수들은 총장 후보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수의 전임교원에게 추천받도록 하는 등 재단이 교수들의 총장 선출 과정 참여를 적극 보장해 줘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경영대 한 교수는 “재단이 추천한 총추위 위원 7명은 당연히 재단과 뜻이 같은 인사들일 것이다. 구성원들의 의견은 듣지도, 반영하지도 않고 3인 후보자 선정부터 총장 선임까지 전 과정을 재단이 다하겠다는 뜻”이라며 “총추위에 재단 추천위원 몫은 없어야 한다. 대다수 교수들이 직선제를 선호하는 마당에 간선제의 탈을 쓴 임명제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답답해했다.
실제로 교수협의회가 지난해 10월 9~16일 이화여대 교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총장 선출방식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02명 중 절반에 달하는 102명은 직선제를 가장 바람직한 총창 선출방식으로 꼽았다. 이어 88명은 간선제를 선호했고, 재단임명제를 희망하는 교수는 고작 12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과학대 한 교수는 “현재 많은 교수들이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직선제를 선호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수들의 의견이 일절 반영될 수 없는 총장 선출방식을 제시한 재단에 대한 실망을 감출 수 없다”며 “한때 우리와 같은 평교수였던 이사장이 어쩌다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가장 우선적으로 총추위에서 재단 추천자를 빼고, 다른 규정들도 교수들의 요청을 반영해 재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대 한 교수는 “대학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는 인사에게만 후보 지원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며 “추천자 수를 30명 이상으로 강화해야 옳다. 재단은 교수들과의 협의 과정을 거쳐 총장 선출방식을 다시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교수들의 반발에도 현재 재단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협의회 소속 한 교수는 학내 홈페이지를 통해 “성명서를 통해 차기 총장 선출방식의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제시했음에도 재단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재단의 강팍하고 절대적인 파워가 놀랍다”며 “교수협의회는 물론, 교무위원들까지 무력화시키는 재단의 완승을 축하한다”며 냉소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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