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3명의 재학생이 자살하면서, 이른바 ‘서남표식 개혁’이 재조명 받고 있다. 국내 대학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전면에서 뜯어 고치며 ‘개혁의 아이콘’으로 통하던 그와 그의 정책들이 적지 않게 흔들리고 있다.
■ “징벌적 등록금, 교육적이지도 못해”=그의 개혁 정책 중 가장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게 ‘징벌적 등록금제’다. 서남표 총장이 지난 2006년 9월 취임한 뒤, 2007년 신입생부터 시행했다. 전액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제도를 폐지하고, 성적에 따라 수업료 일부 또는 전액을 부담토록 한 것이다.
평점 3.0 이상인 학생은 그대로 장학금 100%를 지급받는다. 그러나 3.0에서 2.0 사이는 최저 6만원에서 최고 600만원을 내야 한다. 평점 2.0 이하는 연간 1500만원이 넘는 수업료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KAIST 학생 커뮤니티 ‘아라’에 글을 올린 한 재학생은 ‘징벌적 등록금’에 대해 “학생들을 줄 세우고 학점이 낮은 학우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생은 “징벌적 수업료가 학생들이 스스로 즐거워 열정을 갖고 공부하는 것을 막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KAIST 교수도 “공부를 못한다고 그 벌로 돈을 내게 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100% 영어강의를 도입한 것도 비판을 받고 있다. 영어강의는 2007년 학부 신입생부터 실시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전체 전공·교양 강좌로 확대됐다.
영어강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단 학업 부담감 때문만이 아니다. 도입 당시 학교는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자연과학대학의 한 교수는 “교수가 강의하면서 수업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가끔 농담도하고, 이론에 얽힌 일화도 들려주곤 했는데 영어강의가 시행되고 나선 책 읽듯이 강의하기 바쁘다”며 “그나마 남아 있던 학생과의 인간적 접촉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 “언어에 의해 사고 지배받아” 영어강의도 비판=한 전산학과 교수도 “우리가 정말로 세계 ‘톱 10’이 되고 싶고, 세계 중심에 서고자 한다면 자연과학도 우리 언어로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사고가 지배를 받기 때문에 가급적 학문도 모국어로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일각에선 “국내 학생이 국내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때 모국어로 듣는 것도 하나의 교육권”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재학연한 제한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석사과정의 경우 3년, 박사과정은 5년으로 졸업연한을 단축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교육비 지원혜택을 폐지하는 등 불이익을 준다. 학교측은 ‘국가 세금으로 학비를 지원하는 만큼 졸업을 미루지 말라’는 취지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작년 5월 서남표 총장 연임을 앞두고 학부 총학생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학부생 65.8%, 대학원생 60.8%가 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최근 학생 자살과 관련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학생도 “연차초과 제한을 둬 배우고 싶은 학문이 있어도 돈 이라는 장벽 때문에 쳐다보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물론 서 총장의 개혁 정책이 모두 이번 일을 계기로 재평가 받는 것은 아니다. 서 총장의 가장 큰 성과는 교수들의 테뉴어(정년보장) 심사를 강화한 점이다. 서 총장은 2006년 9월 취임 직후부터 테뉴어 심사를 강화, 약 4년간 KAIST 교수 148명 가운데 24%를 심사에서 탈락시켰다.
이 같은 조치는 ‘철밥통’으로 통하던 국내 교수사회를 개혁하는 시발점이 됐다. 서울대·포스텍 등 경쟁대학은 물론 주요 대학이 교수 평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서 총장의 개혁이 외부에 강한 메시지로 발산되면서, 고액 기부도 줄을 이었다. 100억 이상의 고액 기부는 물론, 기부 건수 자체도 늘었다. 2006년 1004건에 불과하던 기부건수가 2009년 3324건으로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대학평가 순위도 상승했다. 서 총장이 취임하던 해인 2006년 ‘더 타임스’ 평가에서 KAIST의 순위는 198위였다. 그러나 2009년에는 무려 129계단 상승한 69위에 랭크됐다. KAIST 관계자는 “개혁의 성공 여부는 그 리더가 떠나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테뉴어(정년보장) 심사를 강화한 것은 잘한 일이고, 이는 서 총장 퇴임 후에도 유지될 것 같다”고 말했다.
■ 정년심사 강화는 평가하지만 소통 원해=이런 성과를 인정한다고 해도, 구성원들은 그와의 소통을 원하고 있다. 또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교류가 부족하단 의견이 구성원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자연과학대 교수는 “KAIST는 약 8000명의 학생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사감 가운데 교수가 한 명도 없다. 가끔 기숙사를 찾아 학생과 소통하려는 교수도 없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이를 “학교에서 연구업적만 강요하다보니까, 아무도 그런 역할을 맡지 않으려 한다. 만약 젊은 교수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면 당장 ‘내 논문 당신이 써 줄거냐’는 불만을 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서남표 총장은 학생 자살과 관련,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 최근 학생 자살에 대해 사과는 했지만, 그간의 개혁정책이 KAIST의 비효율성을 해소한 만큼 정책의 근간은 바꾸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총장 메시지를 보면서 너무 생각이 확고하신 것 같아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작년 7월 힘겹게 연임에 성공했다. 구성원 반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사회의 연임 결정 직후 ‘소통부재에 대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향후 대학 운영에 있어서 많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 구성원들은 어느 때보다 그 약속이 지켜지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