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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은 과격, 정부는 과잉 
학생운동의 폭력성은 대중들에게 가장 비판 받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를 의도적으로 조작,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이 역시 옳지 못하다. 한총련 소속 5천8백48명 연행, 이 중 4백여명 구속, 경찰·학생 부상자수 2천8백여명이란 1990년 이후 사상 최고의 연행자와 구속자수를 남겼던 연세대 사태는 이 같은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통일 대축전’ 행사 충돌

96년 8월 12일부터 20일까지 있었던 연세대 사태는 당시 한총련이 북한과 공동으로 기획한 ‘통일대축전 행사’를 김영삼 정부가 불허한 데서 비롯됐다. 한총련 1만여명 학생들은 김영삼 정부가 통일대축전 행사를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 이를 원천 봉쇄하자 12일부터 연세대를 비롯, 서울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고 경찰과 대치상태에서 14일부터는 연세대로 집결해 통일대축전 전야제와 통일노래 한마당 행사를 강행했다. 이에 경찰은 1백77개 중대, 2만1천여명 병력과 헬기 11대를 동원, 집회 해산을 위한 강경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한총련과 경찰 간의 치열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 학생들은 물론 의경들도 부상을 당하고 심지어 시위 진압에 나섰던 의경이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결국 연세대 사태는 17일부터 20일까지 한총련과 경찰이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인 뒤 20일 새벽 경찰이 종합관에 남아 시위를 벌이던 최후의 학생들을 검거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연세대 사태가 끝난 후 한총련은 심한 내·외적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한총련이 보여준 과격 시위, 강경 노선은 국민적 반감을 샀고 심지어 한총련 내에서도 강경노선에 반대한 많은 이탈 세력이 생겨 학생운동에 대한 진지한 재조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98년 대법원은 연세대 사태를 계기로 한총련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를 키운 정부의 과잉 진압

하지만 연세대 사태를 한총련의 과격성 및 이적성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으며 정부의 과잉 진압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거셌다. 즉 일명 ‘독수리 작전’으로 명명된 연세대 사태 진압과정을 차기 대권 준비를 위해 안정 정국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의도된 사건’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던 것. 이에 대한 근거로는 첫째, 당시 한총련이 연세대에서 강행했던 통일대축전에서 주장한 △연방제 통일방안 수렴 △주한미군 철수 △북·미간 평화협정 철수 등의 내용은 이전부터 계속된 것으로 김영삼 정부가 특별하게 이적성을 논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 둘째, 집회를 불법이라 규정한 경찰이 학생들을 몰아넣기 위해 연세대에 집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허락한 점, 셋째, 한총련이 당초 계획했던 판문점 출정식을 치르지 않고 15일 폐막식이 끝나면 자진 해산하겠다는 요구를 묵살하고 강경진압을 계속했던 점 등이다.

이렇게 볼 때 연세대 사태는 한총련과 정부 양측이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인 비극적인 사건이다. 한총련은 적극적으로 통일운동에 나서 기대를 모았지만 강경노선, 과격시위로 대중적 지지 기반을 상당히 상실했으며 학생운동에 있어 과격시위를 근절하겠다고 나선 정부는 정치적 계산이 짙은 과잉 진압으로 사태를 더 악화시킨 주범이라는 강한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입력 : 200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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