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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에 몰아친 IMF 한파 
우리 경제가 성장의 거품이 걷히면서 외환위기를 맞게 되고 97년 IMF구제금융 신청을 받아들이게 되자 기업들의 부도와 실직자 양산, 단란했던 가정의 파괴 등 우리 사회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이는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학교재정 대부분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대학들의 경우 휴학, 군입대 등으로 학생들이 캠퍼스를 떠나자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IMF의 명암

개교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은 각 대학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눈물겨운 살아남기에 돌입했다. 특히 1달러당 9백원이던 환율이 1천7백원 정도로 급등해 교육차관 원리금이 두 배로 불어난 것은 각 대학이 맞은 가장 큰 악재. 98년 당시 교육부와 각 대학이 상환해야 할 교육차관 원리금 총 규모는 미 달러화 기준으로 9천만달러였다. 이중 약 40% 가량의 엔화 차관을 제외한 5천4백만달러가 달러 차관이었으며 70여개 사립대가 갚아야할 차관은 5천4백만 달러의 30%인 1천6백만달러 정도였다. 대학들은 교육차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돌아올 불이익이 만만치 않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다른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학들은 외화 절약운동을 벌여 경북대 등 대구지역 5개 대학은 대학별로 필요한 외국잡지를 선정, 구입한 뒤 다른 대학교와 공동으로 이용했고 서원대 교직원 1백20여명은 ‘경제난 극복을 위한 교직원 실천 결의문’을 채택, △업무 추진 시 외화절약 부분을 적극 발굴 △사치성 해외유학 억제 등을 실천했다. 충남대처럼 겨울방학 중 예정됐던 학생들의 해외 단기 어학연수 일정과 교수들의 해외 출장을 전면 취소 혹은 최대한 자제시킨 학교도 많았다. 한편 전남대 총학생회처럼 학생들이 스스로 ‘전남대 우리 경제 살리기 운동본부’를 구성, 국산품 사용 장려 등 경제 살리기에 힘쓰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취업 한파

하지만 IMF 한파로 그 누구보다 모진 추위에 떨어야 했던 이들은 바로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이었다. 기업들이 기존 인원을 감축하고 신규 채용을 억제하는 등 채용문이 바늘 구멍보다 좁아지자 대졸 실업자가 양산,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학생들은 실의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오죽 했으면 당시 4학년생들은 ‘4(死)학년’으로 불렸을까?

또한 실업 가정이 늘면서 캠퍼스를 떠나는 학생들도 대폭 증가했다. 98년 당시 교육부가 전국 1백55개 4년제 대학의 학적 변동 상황을 집계한 결과 자퇴생의 경우 전년보다 59.4% 증가한 1만 8천8백59명이었으며 미등록생도 21.1% 늘어난 1만 5백65명이었다. 이와 함께 휴학생 역시 전년도 1학기보다 13.3% 증가한 40만 9천8백36명이었다.

이런 학생들의 대규모 휴학 및 자퇴를 막기 위해 교육부는 대학 학자금 융자 규모를 대폭 늘려 실직자 자녀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도록 조치를 취했으며 대학들은 서강대, 수원대, 울산대 등처럼 ‘교직원 월급을 줄여서라도 불우한 학생들을 돕자’는 취지의 ‘IMF 장학금제도’ 및 ‘IMF 극복 장학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학생들의 발목을 잡기엔 역부족이어서 대학들은 텅빈 교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어야 했으니 IMF발 한파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입력 : 200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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