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가 한창 호황을 누릴 때는 대학생들에게 있어 취업이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취직 그리고 결혼, 이것은 하나의 공식이자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거품이 걷히고 급기야 1997년 외환 위기에 따른 IMF관리체제가 시작되면서 대학생들은 ‘취업’에서 한 글자가 바뀐 ‘실업’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취업’과 ‘실업’
경제불황으로 기업들이 기존 인원을 감축하는 구조 조정을 단행하며 신규 채용의 문을 확 좁혀버리자 졸업 후 취업이란 희망을 품고 미래를 준비해왔던 대학생들은 결국 실업이란 거대한 벽에 부딪혀야만 했다. 이러한 사실은 대졸 실업자수가 97년 9만여명, 98년과 99년에 각각 11만명에서 2002년에는 20만 9천명에 이른 것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현대그룹 한 인사관계자가 “엊그제 구조 조정을 한다고 동료들을 내보내놓고 어떻게 신규 채용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해 대졸 실업자의 현실을 반영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취업난이 가중되는 현실에서 대학생들은 IT분야를 중심으로 한 ‘벤처 창업’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창업 활동은 이찬진의 ‘한글과 컴퓨터’처럼 이전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열기’로 통할 만큼 확산된 것은 대졸 실업자가 양산되는 때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학생들의 창업 열기는 98년 70건, 99년 97건, 2000년 1백여건 등 창업 건수에서도 그대로 반영됐으며 학교 내에 각종 창업동아리들이 결성됐다. 이 중 97년에 서강대 벤처동아리 블랙박스가 창업한 넷게임 제작사인 (주)코디넷은 인터넷 게임인 ‘건 체이스’를 개발, 연매출이 2억5천만원에 달하고 일본 진출까지 성공했을 정도.
대학가 창업 열기
대학가에 창업열기가 확산되자 정부와 대학 당국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게 됐다. 특히 당시 김대중 정부는 창업 열풍을 정부 정책의 하나였던 IT산업 육성과 연결시켜 적극 지원에 나서 98년 중소기업청은 대학 창업동아리에 대한 정부 지원을 크게 확대해 2백30억원의 별도 예산을 확보, 동아리당 1억원 한도 내에서 무담보로 지원했다. 또한 우수동아리 출신에게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 개설될 ‘대학생 창업훈련과정’ 우선 입교 및 ‘창업보육센터’ 우선 입주의 특전도 부여했다.
대학의 경우, 한양대는 98년부터 창업 실무를 가르치는 ‘창업과 기업가 정신’ ‘중소기업론’ ‘기술관리론’ ‘창업 타당성분석론’ 등을 전공 및 교양과목으로 잇따라 개설한데 이어 상·하반기로 나눠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와 경연대회도 진행했다.
하지만 취업난 시대의 새로운 돌파구로 98년부터 본격적으로 불어닥친 벤처 창업열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적인 수익 모델이 한계에 이르자 재평가 받는 시점에 이르게 됐다. 코스닥 시장의 폭락, 벤처 거품론, 2000년에 터져버린 정현준, 진승현 게이트 등 소위 벤처의 상징인 ‘닷컴’기업이 생사의 기로에 서면서 벤처 다시보기가 확산됐다.
입력 : 2004.01.16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