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이 전국을 휩쓸던 때, 상아탑을 지키던 교수들은 일제히 거리로 나와 이렇게 외쳤다. “1인 독재 타도”, “이 땅에 민주주의를!” 그리고 근 40년이 흐른 1999년 전국의 교수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이렇게 외쳤다. “BK21 전면 철폐하라.”
BK21은 세계수준의 대학원 중심 대학 육성, 지역 우수대학 육성을 골자로 해 7년간 총 1조 4천억원이 투입되는 교육부의 고급두뇌 양성 프로젝트였는데 이에 대해 교수들은 유례없는 대규모 반대시위로 맞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BK21 전면 철폐하라
BK21이 발표된 후, 99년 6월 15일 전국 국공립대교수협의회와 전국 사립대교수협의회 연합회는 부산대 학생회관에서 1천여명의 교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두뇌한국21, 반민주적 대학 정책의 전면 개혁을 위한 전국교수대회’를 갖고 정책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으며 집회 후 부곡교차로까지 거리 시위를 벌였다. 또한 7월 8일에는 전국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 사립대학교수연합회,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교수 1천5백여명이 BK21 사업 반대뿐 아니라 정부의 졸속한 교육행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서울 명동성당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진 뒤 정부 세종로 청사까지 가두시위를 벌여 부산과 서울에서 4·19 이후 최초로 교수 거리 시위가 촉발됐다.
그렇다면 교육부의 두뇌한국을 표방한 우수인력 양성 계획인 BK21이 도입 초기부터 이 같은 논란을 불러온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교수들의 반대 목소리를 들어보자.
교수들은 “교육부의 BK21은 일부 대학에 집중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소수대학의 독과점체제를 제도화해 서울집중과 지역간 불균등, 지역소외를 심화시켜 나머지 대학을 황폐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즉 대학서열 고착화와 대학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다는 것. 또한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할 수 없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대학 간 불평등 심화 우려
이러한 교수들의 우려는 사업대상자 발표가 있자 곧바로 현실로 드러났다. 과학기술분야 육성사업에 있어 서울대가 전 분야를 석권한 것, 지방대 육성사업에 영남대와 한밭대(당시 대전산업대)를 제외하곤 모두 국립대가 선정된 것, 아주대가 2개 사업 분야에 선정된 것 등이 대표적 실례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는 “서울대 등 일부 대학에 지원이 집중돼 교육부가 특정 대학을 내정하고 선정 작업을 했다”고 비판했고 전국 사립대 교수협의회 연합회는 “김덕중 교육부장관이 총장으로 있었던 아주대가 예외적으로 2개 사업 분야에서 단독 주관대학으로 선정된 것은 불공정 예산지원 행위이자 특혜”라며 BK21 전면 철회를 주장했다.
교육부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인문·사회분야 대학원 지원 방안은 특정분야를 지정하지 않고 지원분야 등을 자유 공모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마련했고 중간 심사를 엄격히 실시해 계약 위반이 드러난 사업자는 중도 탈락시키겠다고 공표했다. 이와 관련 2002년 10월 18일 교육부가 중간평가를 실시한 결과, 인문·사회분야에서 서울대와 충남대 등 4개 사업단이 중도 탈락했으며 지역대학 육성분야에서 1개 사업단이 협약을 이행한다는 조건으로 1년간 유예처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BK21은 초기의 거센 반대 여론이 많이 수그러든 채 2003년 4월 11일, 39개대학 1백27개팀을 신규 사업자로 선정하는 등 계획대로 진행 중에 있다.
입력 : 200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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