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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르텔과 신음하는 아카데미 
2000년대 초 학계는 ‘실명비판 논쟁’으로 한창 뜨거웠다. 그 중심에는 지식인의 자기성찰을 촉구하며 실명을 직접 거명하는 공격적 글쓰기로 화제를 모았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가 있었다.

그는 95년 ‘김대중 죽이기’와 ‘전라도 죽이기’로 한국 사회에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한 이후, 97년부터 1인 저널룩 ‘인물과 사상’을 창간, 직무유기와 위선으로 가득찬 지적 풍토에 도전장을 던진 후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한 전방위적이면서도 정력적인 집필 활동을 통해 가는 곳마다 논쟁을 촉발했다. 직선적이고 감각적인 구어체 문장으로 상대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그의 주요 타깃은 지식인의 기회주의, 지역차별, 학력차별, 남녀차별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불합리한 차별과 폭력, 그리고 연고주의와 패거리문화. 그는 이를 떠받치는 위선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심급을 달리하는 다양한 차원의 논리를 동원해 정교한 돌파를 시도해왔다. 물론 그 이면에는 놀라운 집념과 끈기, 성실성이 뒤따랐다.

강준만의 ‘죽이기’ 시리즈

특히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윤리를 상실한 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언론 권력에 대한 그의 질타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시민사회가 ‘안티조선’을 의제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조선일보의 정략적인 진보지식인 이용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해온 일부 지식인 그룹에 대해 맹렬한 실명비판을 가하면서 학계에 ‘실명비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간단히 말해 이른바 ‘좌파’ 내지 ‘진보적’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진보세력에게 가장 적대적인 조선일보에 대해 별 문제의식 없이 기고 등을 통해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이는 조선일보의 정략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하거나 그 해악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요지였다.

또 이는 지식계에 만연한 위선 내지 언행불일치를 보여준다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그가 조선일보에 필자로 참여했던 임지현과 벌인 논쟁의 와중에 밝힌 ‘실명비판’에 대한 견해를 보자.

실명비판 논쟁

“나는 그 누구건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하는 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내가 언제 극우 인사가 조선일보에 글 쓴다고 시비 거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언제 국민을 상대해야 하는 공직자가 조선일보에 글 쓴다고 시비 거는 걸 본 적이 있는가. …… 내가 시비를 거는 건 자신의 안방을 벗어나 사회를 향해 파시즘과 박정희를 비판하는 지식인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경우이다. 이건 조선일보가 좋다 나쁘다 하는 문제의 차원을 떠나서 그 지식인의 일관성과 언행일치, 그리고 언론에 대한 인식 수준을 문제 삼는 차원에서 얼마든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문제 제기를 해야 마땅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직설적인 스타일의 실명비판이 전례 없이 낯선 것이었다는 데 있었다. 그의 문체는 팔팔 뛰는 생명력이 있었던 대신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에게는 인격 모독으로 다가와 매우 불편한 것이었다. 특히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을 ‘밥 먹듯이’ 해온 교수사회였지만 비판을 받는데는 익숙하지 못했던 만큼 강 교수의 비판은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성기 한일장신대 교수는 그의 방법론에 대해 “오만과 편견, 독선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고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는 “모욕적인 글로 상대방을 조롱하는 책을 만들어 판매부수를 늘리고 돈을 벌어들이는 그런 인기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 글로 싸우는 논쟁도 상대에 대한 예절이란 것이 있다”며 격분에 차 강 교수를 고소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명비판 논쟁을 통해 지식계의 사회적 책임과 지식인의 언행일치 문제에 대한 윤리적 각성의 계기가 된 점은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또 이후 논쟁의 전선도 문학권력 논쟁, 정치적 커밍아웃의 문제 등 영역이 점차 확대되면서 우리 지식계를 떠받치던 위선과 기만의 체제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잇따르기도 했다. 
입력 : 200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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