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대학가의 단골 화두로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는 단연 구조조정과 대학간 통폐합이다. 이는 피상적으로는 대입학령인구가 대입총정원보다 적어지는 ‘대입정원역전현상’에 대한 지방 소재 대학들의 응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입생 모집난이 벌써 대전권까지 올라왔고 올해의 경우 천안권까지 올라온다는 얘기도 두루 입길에 오르면서 대학들의 위기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 물론 고등교육을 국가발전의 엔진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대찬 포부가 구조조정과 통폐합을 추동하는 직접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대학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다양한 층위와 측면에서 분출되면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혼란이라는 지적도 있다.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대학들의 통합작업. 그렇다면 국립대 통합 움직임의 배경은 무엇이고, 과연 실현가능성은 있는 것인지 최근 대학가의 사정을 들여다보자.
광주·전남 5개대 통합 급물살
지난 7월 전남대, 여수대, 순천대, 목포대, 목포해양대 등 광주전남지역 5개 국립대가 통합을 전제로 ‘연합대학’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고 선언했다.
이들 5개 대학은 발표와 거의 동시에 연합을 담당하게 될 실무위원회를 구성, 오는 11월 중에는 연합대학의 필요성과 조직 구조, 사업 내용, 경쟁력 강화 방안, 소요 예산 등을 포함한 세부 사업계획서를 작성, 교육부 등 관련 기관에 제출하기로 했다. 불과 4개월이 안 된 시점임을 감안하면 이들 대학의 ‘연합’을 위한 행보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셈.
국립대에 비할 때 지방사립대의 체감 위기는 더욱 다급한 상황. 광주전남지역 16개 사립대 기획실·처장들도 이에 뒤질세라 지난 8월 두 차례 모임을 갖고 도서관, 연구시설의 공동사용과 신입생 정원감축 등을 시행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이들 대학은 공동 해외연합캠퍼스를 중국에 구축키로 합의하기도 했다.
또 강원지역 대학 총장들도 머리를 맞대고 대학간 지나친 경쟁을 지양하고 지역별 특화산업 육성을 위한 대학간 역할분담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지난달 18일 11개 대학 총장이 참석한 강원지역 대학총장협의회에서는 강원지역 인적자원 풀 구축과 활용방안을 논의하는 등 강원지역 대학 육성 공동 대처방안을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또 이를 위해 각 대학이 참여하는 강원지역 대학교 발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충남지역의 경우 충남대 등 2개 대학이 국립 천안공업대와의 통합을 타진하고 있다.
전북대와 군산대·익산대학 등 전북지역 3개 국립대 교수협의회장들도 지난 8월 성명을 내고 “정부의 정책과 지방대학의 자구노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 국립대학간 통합은 주목해야 할 키워드”라며 ‘전북지역 국립대학 협의체’(가칭) 구성을 촉구했다.
이국행 전북대 교수회장은 “많은 교수들이 신분 불안 등으로 이에 대해 반대의견을 가진 것도 사실이지만 대학간 M&A 지원이 교육부의 정책방향인 만큼 정부의 계획에 대비가 필요하다”면서 “우선 각 대학 총장들이 적극 나서 협의체를 구성한 후 대학통합 실무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대의 이런 움직임은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큰 틀의 변화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묻어 있기까지 하다.
대학을 둘러싼 내·외부적 위기 … 너도 나도 생존 경쟁
대학들에 따르면 이런 변화는 직접적으로는 이른바 ‘지방대 5중고’에서 촉발했다. 모집정원 채우기가 힘들고, 재학생의 수도권대 편입행렬은 이어지고, 졸업생들의 취업난은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교수 확보의 어려움과 이들의 이탈현상까지, 지방대의 아우성은 엄살만은 아닌 듯 하다. 여기에 더해 대학의 현상유지를 놔두지 않는 외부요인도 있다. 지방거점대학 및 특성화 대학에 대한 집중 지원방침 등 일련의 정부 대학정책이 몰고 온 ‘후폭풍’에다 교육개방 여파까지 밀려오자 대학들은 생존위기로 몸이 닳았다.
내부 염증도 깊어지고 있다. 전남지역 국립대의 한 기획처장은 “국립대의 잇점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정원을 채우고 있지만 문제는 입학하는 자원의 수준”이라며 “교수들마다 최소한의 바탕 지식도 갖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치려다 보니 ‘한숨만 앞선다’는 토로가 잇따른다”고 전한다. 정상적 고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강의실 붕괴’ 현상은 지방대 교수들의 체감 위기를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는 얘기.
교육부 “통폐합 지원”
물론 교육부가 지난 2000년 12월 발표한 ‘국립대발전계획안’에서 대학간 교류·협력과 공동발전계획안을 추진하는 대학에 우선적으로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 대학들의 짝짓기에 가장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 역시 이런 방침을 천명하고,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연합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및 법제도적 뒷받침을 약속한 이후 이런 움직임은 더욱 탄력이 붙었다.
지난 7월 광주를 방문한 윤 부총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립대학의 숫자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위해 광주·전남 지역 대학들이 연합체제를 구축하기로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잘 될 경우 재정지원을 해 다른 지역에도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연합대학 체제 구축을 위해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면 법을 마련하도록 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이 산하에 여러 캠퍼스를 두는 것이나 파리대학이 제1대학, 제2대학 등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해 다양한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 8월 교육부는 한발 더 나아가 참여정부의 교육개혁 계획표라 할 ‘교육인적자원개발 혁신 로드맵’ 시연회에서 “현행 대학체제가 시장과 사회 요구에 미흡하고 획일화돼 국가경쟁력이 약화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학간 M&A를 적극 추진하는 한편 대학 구조조정시 귀속재산의 처리와 학생 및 교원 보호를 위한 관계법령 개정안을 올 연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합’의 실질 수준이 통합 향방 좌우
하지만 부푼 장밋빛 청사진 보다 당장 ‘연합’ 수준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협력시너지 효과를 발휘할지, 또 이 효과를 어떻게 관리해나갈지가 향후 대학들의 ‘통합’단계 진입을 가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월 광주전남의 5개 대학 총장들이 합의서를 통해 밝힌 계획안은 갈 길이 까마득함을 암시한다. 이들 대학이 연합의 초기 형태로 제시한 협력방안은 △광주·전남 국립대학 장기발전계획 공동 수립 △공동 협력사항 논의를 위한 총장협의회 설치 △교수 학생 교류 △도서관 장서 공동이용 △기자재 공동 사용 △각 대학 중점 육성분야 및 특성화 사업 활성화 협조 △각종 연구사업 교류협력 강화 등으로 아직까지는 기존의 대학간 학사교류의 내용과 별반 차별성이 없는 수준.
그러나 전남대 관계자는 “5개 국립대의 통합노력에 지역 주민들이 동의하고, 교육부가 여러 차원의 지원만 해준다면 통합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며 섣부른 예단을 경계했다. 특히 교육부 차원에서 재정지원뿐 아니라 제도 정비를 통한 뒷받침을 약속한 만큼 대학들의 상호협력만 원활히 이뤄진다면 더욱 풍부한 내용의 협력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연합의 성과를 밑바탕으로 대학 내부적으로 대학발전 상에 대한 구성원간 협의채널을 가동하고 컨센서스를 이룬다면 ‘연합’을 넘어 실제 ‘통합단계’로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낙관했다.
입력 : 200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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