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칼럼/이슈 > 대학50년사

싹트는 저항의식 그리고 좌절 
1960년대는 4·19 민주주의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가 연이어 발생한 민족의 역사에 명백한 한 획을 긋는 시기였다.

민중 탄압과 독재를 일삼던 이승만 자유당 정권을 학생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무너뜨리고 이 땅에 민주주의 불씨를 당긴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의 순수 의지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더불어 이 나라 민중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확인시켜 줬다.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

4·19 학생의거 이후 쿠데타를 일으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군부는 민주주의의 강한 의지를 가진 국민 앞에서 늘 정권의 정통성 결여로 불안해야만 했다. 집권기에 박정희는 늘 5·16이 4·19의 민주주의 혁명 이념을 계승하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렇게 의식화하도록 교육 당국에 강요했다.

또한 4·19 혁명의 핵심 세력인 학생이라는 순수 집단을 두려워한 나머지 대학 정비와 사립학교법 등을 통해 학생, 특히 대학생의 세력을 축소시키는 정책을 폄으로써 얄팍한 속셈을 노출시켰다.

지나친 관권 개입이 난무했으며 대학은 물론 사회 전반에 감시와 협박과 통제만이 기승을 부렸다.

특히 학원 사찰을 위해 학내에 침투시켰던 비밀조직의 정체가 탄로난 ‘청사회’ 사건과 학생들의 순수한 민족주의 연구 활동에 간첩혐의를 씌워 구속했던 ‘민비연’ 사건은 정권의 도덕성에 적잖은 상흔을 남겼다.

음악감상실과 대학축제

그러나 절망에서 희망으로, 희망에서 다시 절망으로 이어지던 60년대의 대학인들은 음악감상실에서 삶과 철학을 얘기하며 잠시나마 마음의 평온을 찾기도 했고 비틀즈와 존 레논의 음악을 들으며 현실 비판과 좌절의 긴 호흡을 내뿜기도 했다.

대학축제도 이 시기에 처음 나타나 대학 문화의 하나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4·19에 의해 주체적 의식과 민족주의가 한창 고조된 대학가에서는 ‘우리 것을 찾자’는 우리 문화 부활 운동이 일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한 사람의 인생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인데 하물며 한 사회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와 이야깃거리가 있겠는가.

굴곡이 많을수록 험난한 여정을 겪을수록 사람의 정신은 더 단단해지고 민족의 의식은 더 강력하게 결집될 수 있음을 상기하며 이 시기의 수많은 학생들의 저항과 희생이 오늘날의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입력 : 2004.01.15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