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혁명을 계기로 교수와 학생들은 학도호국단의 해체를 여론화시켰다. 이에 따라 1960년 5월 3일 허정 과도정부는 국무회의에서 학도호국단의 해체를 정식 의결했다. 창단이래 10년 7개월만의 해산이었다. 낡고 부패한 정치와 체제의 청산이 사회 전 부문에서 강력하게 요구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학도호국단 총재
본래 학도호국단은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의 일민주의 사상에 기초해 1949년 9월 대통령령 제186호에 의거 조직되었던 것이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적 냉전체제하에 지배 이데올로기의 이질화로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남한의 정치가들이 국민의 이념을 통제하기 위해 시행한 군사문화의 하나였다.
민족혼의 진작이라는 명목으로 조직된 학도호국단은 그러나 중앙 학도호국단의 총재가 대통령이었을 정도로 통치 집단의 정점으로부터 철저히 위계화돼 비민주적이며 비자율적이었고 통치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하기에 적절한 조직이 되어갔다. 이른바 학원 내 학생활동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기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1956년 5월 19일 연세대 정법대학 학도호국단 주최 간담회에서 학도호국단의 무용성과 해체론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창설 당시 학생들의 애국운동에 기여한 바가 있지만 자유당 말기에는 이승만 독재 정권의 어용단체 노릇을 하였으며 전체 학생의 의사는 무시되고 개인의 창의적 활동 말살로 일제 말기 파시즘 교육의 부활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대두된 것이다.
학생자치기구 ‘학생회’로 결정
학도호국단이 해체된 지 며칠 안돼 서울 시내 각 대학의 학생처장회의에서는 새로 만들어지는 학생자치 기구의 명칭을 놓고 토론을 벌인 끝에 ‘학생회’로 결정을 내렸다.
9월 12일 서울시내 28개 대학교 학생회 대표들의 발기로 전국 각 대학교 대표 89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대학생 총연합회’ 결성대회를 가짐으로써 학생 스스로 조직된 민주적인 학생기구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입력 : 2004.01.15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