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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정비를 단행하라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가 대학교육의 고삐를 부여잡았다. 교육개혁을 감행, 정부는 그 핵심에 대학 정비라는 굵직한 전환기를 가져왔다. 군사정부의 행정력을 대변해주기도 하는 이 시기의 대학 정비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4·19 혁명 이후 대학의 난립과 방임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고학력사회이지만 사회 구조는 이 많은 고학력자를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학의 질적 수준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생 수의 과다, 인력수급과의 불균형, 학원분규로 이어지는 대학의 부패, 학과의 중복과 낭비 그리고 급격한 양적 팽창이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했다는 점 등을 들어 대학교육의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대학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립대 축소, 정원 감축

1961년 6월 21일 문희석 문교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학정비에 대한 군부의 의지를 표출했다.

7월 22일 제1차 대학정비안이 발표됐고 설립 허가 취소, 재단 이사 및 총장과 학장의 승인 취소 그리고 정원 감축, 신입생 모집 금지, 학과나 단과대 폐지 등의 내용이 여기에 포함됐다.

8월 16일 국립대학의 정비 기준을 밝힌 제2차 대학정비안이 나온 직후 9월 5일 국·공립대학 정비안이 발표됐다. 서울대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공주사대 등에 적용된 이 정비안의 주요 골자는 사범대학의 4개 학과를 제외한 타 학과를 폐지하고 문리과 대학으로 전학을 허용한다는 것. 이에 서울대 사범대 학생 1천7백50여명은 재고를 요청했고 이와같은 학생들의 집단적 움직임에 대해 군사정부는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대응한다.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불순 세력에 의한 것으로 규정, 경고 담화문을 발표하고 서울대 사범대 학장 윤태림과 학생과장 정병조, 정범모 교수 등에게 이 책임을 물어 파면했다. 이후 이들 세 교수는 모두 복직됐다.

같은 해 11월 18일에는 사립대학의 정비안을 발표, 37개 사립대를 25개교로 축소하고 야간대학과 초급대학을 늘리는 한편 신학대학을 각종학교로 격하시켜 학사학위를 주지 않았다. 결국 덕성여대와 동덕여대, 한국사회산업대, 관동대, 원광대, 동양의대 그리고 청구대와 마산대, 홍익대, 단국대, 국학대 등 12개교는 4년제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여론무시한 정책, 실패로 종지부

이처럼 수립에서부터 시행에 이르기까지 여론을 무시하고 이뤄진 대학 정비는 비판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정원 감축으로 인한 사립학교의 재정난과 납입금 인상, 교원 감축 그리고 폐교되거나 폐과된 학생과 교수들의 동요가 특히 문제였다.

1961년도 대학 정비는 대학 운영의 정상화라는 본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운영난을 가중시키고 교원 양성교육의 파탄과 지방대학 특수학과 폐지, 타율에 의한 대학의 학과 및 정원 감축, 그리고 여성교육의 약화 등 갖가지 문제를 파생시키거나 악화시켰다. 이에 62년 말 제출된 재조정안은 학과 복구와 정원 증원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동덕여대 등 8개 대학의 부활과 단국대, 국민대, 덕성여대 등 주간대학으로의 승격, 그리고 신학대학 환원 등이 이뤄지면서 결국 2년 6개월간의 대학정비는 완전 실패로 돌아갔다. 민정이양을 앞둔 선심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올 만했다.

군부의 급진적 행정 시책에 의한 대학 정비임에도 다소간 의미를 찾는다면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이 양의 감축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으며 대학의 정상화와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은 국가 감독 강화와 강권적 조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됐다는 것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시책과 교육 투자의 증대를 통해서만 이것이 가능하다는 점 또한 인식시켰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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