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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국가가 관장한다 
군사정부가 새롭게 들고 나온 대학입학 선발제도는 다름아닌 국가고시제. 군부의 대학정비, 학사자격 국가고시제와 더불어 국가고시제는 우선 대학생의 정원을 감축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대입자격 국가고시제 도입

1961년 8월 12일 정부는 ‘입학에 관한 임시조치법’(법률제681호)과 이 법의 후속 조치인 시행령 및 시행세칙을 제정 공포한다.

고사의 출제부터 합격자의 결정 심지어 합격증의 교부도 국가가 관리하게 된 것. 또한 국가고시 합격자는 학과별 전국대학 모집정원과 같은 수로 책정했다.

내신제와 대학별 시험성적을 합산한 입학사정으로 인해 대학간 학력격차가 악화, 정원의 초과 모집으로 인한 교육의 질 저하를 유발했던 기존 제도의 대안이었다.

62년 1월에 시행된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시 결과 2만6백19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은 신입생을 모집 선발했으나 모집정원이 미달되는 학과가 속출했다. 정원이 미달된 학과가 없는 대학은 유일하게 서울대뿐이었다.

군부가 내놓은 첫 대학 입학제도는 자격고사가 곧 경쟁 선발고사가 되었으며 대학간 차이가 더욱 극심해졌고 실업계 우대가 지나쳐 비실업계의 희생이 뒤따랐다는 점 그리고 지원 대학에서 시행하는 체능검사 성적의 비중이 컸다는 점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더구나 대학 정비로 어려워진 사립대가 정원 미달로 운영이 더욱 곤란해졌다는 점과 국가에서 일률적인 입학사정으로 대학의 자율성과 특수성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됐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지적됐다.

국가의 간여, 이유 있다?

이에 62년 ‘입학에 관한 임시조치법 시행령 중 개정의 건’이 각의로 의결 공포됨에 따라 대학입학 자격고사는 실질적인 자격고사의 기능으로만 활용되고 입학사정에는 반영하지 않게 된다.

결국 64년 국가고사는 폐지되기에 이른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선발고사로 대입 선발제도가 환원된 것. 68년까지 이어진 이 제도도 그러나 철저하지 못한 입시관리와 군소 대학의 고질적 정원 초과 모집, 이에 대한 감독의 소홀로 대학교육의 질을 더욱 저하시킬 수밖에 없었다.

68년 10월 공포된 대학입학 예비고사 제도 역시 군사정부 대입제도의 기본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가의 간여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셈이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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