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는 예수보다 유명하다”
한국에서 정치적 독재와 경제적 압박,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해 반항과 저항을 꿈꾸며 몸소 나섰던 젊은 대학인들에게 비틀즈의 음악과 존 레논의 구토같은 예술적 발산은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비틀즈의 인기
비틀즈(Beatles)는 영국 노동자 계급 출신의 청년 네 명, 존과 폴, 그리고 조지와 링고가 리버풀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밴드를 결성한 후 영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신화가 되었던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60년대의 대중문화를 압도한 것은 단연 비틀즈이며 비틀즈와 존 레논은 60년대의 대 유행이 되었다. 이들의 문화적 영향력은 소위 비틀마니아 현상을 일으키며 미국에 상륙, 음악계를 휩쓸었다. 미국만이 아닌 전세계에 대한 그야말로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인 셈이었다.
이들의 끊임없는 실험적 음악은 젊은이들을 흥분하게 했고 일약 노동자 계급의 영웅으로 떠오르기에 충분했다.
존 레논은 그가 지닌 묘한 노기와 우울 그리고 공허감을 느끼게 하는 그의 음악 덕택에 비틀즈 멤버 중 특히 젊은 지성들로부터 유난히 사랑을 받았다.
그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의 작품에서 언론과 제도권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면모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존의 정체성은 억압에 짓눌린 젊음으로 하여금 그를 우러러보게 했던 것이다. 더구나 존이 인터뷰를 할 때면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과 매니저가 긴장을 늦추지 못했던 이유, 그리고 존이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가 젊은 지성인들을 통쾌하게 했던 순간들을 선사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존도 진실을 터놓고 말하는 것이 동료 멤버들에게 그리고 비틀즈라는 밴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자 상처를 입었고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대학인들이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며 환호하고 존 레논의 독설에 박수를 보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혁명(Revolution)’이라는 곡을 만들어 학생들의 폭력 시위와 혁명가들의 개인 숭배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존은 이제 반전 평화 운동 대열에 참여해 열광하는 대중과 정치적 음모, 매스컴의 허상 등이 복잡하게 얽힌 치열한 삶을 뉴욕의 웨스트 72번가 그의 아파트에서 암살당함으로써 마감한다.
자의식이 강한 존, 반항적이고 세상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던 존은 비틀즈와 함께 당시 60년대 대학생들의 가슴이고 정신이고 이성이었다. 그래서 60년대 한국의 지성들은 비틀즈를, 그리고 존을 사랑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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