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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인가, 감독인가 
1963년 군정시대의 종식이라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군정시 내놓은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의 대체안 격인 ‘사립학교법’이 법령 제1362호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제정 공포된다.

5·16 군사정권이 대학 정비를 포함한 주요 교육시책을 통해 진정 얻고자 했던 것은 바로 대학의 통제권이었다.

사학의 통제권을 확보하라

국·공립이야 본래 존립부터가 국가 개입이 필연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사립대학에 대한 개입의 여지는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사학에 적지 않은 비리들이 존재함에 따라 이를 개선하고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정책적 명목도 그럴듯했다.

광복 후 사학운영의 특수성을 감안한 법적 근거의 필요성과 재단-대학의 분쟁과 재단 내 분규 등을 조정 해결하는 법안의 필요성이 ‘사립학교법’ 제정을 이끈 것 또한 사실이다.

1961년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을 통해 사립대는 교직원의 임명절차와 해직명령, 학교법인의 이사 등의 선임 기준과 승인 취소, 그리고 임시이사 선임의 특례 등 광범위한 적용을 받기 시작했다. 사립학교법은 기존 임시특례법의 사립학교 관련 조항을 보완하여 법제화한 것에 불과했다. 따라서 정부의 감독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사학의 공공성과 자주성 확보를 위해 제정했다는 사립학교법은 실제 그 내용에서는 사학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크게 저해하고 있었으므로 언론은 물론 사학관계자들의 강한 비판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

국가 감독권의 강화

64년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사학에 지원을 강화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며 합리적 운영에 적절하도록 관계 법규의 개정을 연구 검토해 추진할 것을 밝힌다. 그 해 3월 24일 임시국회에서 국회 문공위원장을 비롯한 11인이 사학의 육성 발전을 위해 공공성을 강조한 나머지 자주성을 위축하고 있는 결함을 시정하고 사학의 질서를 위한 국가의 감독권은 최소화해 자율적 발전을 돕겠노라며 ‘사립학교법 중 개정법률안’을 제출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학생들의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데다가 박정희가 교육당국이 이미 승인한 수업료 인상에 대해 돌연 불가입장을 밝힘으로써 재정 운영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사립대학들이 정원을 초과해 모집해 버렸다.

이에 국회 상임위에서 의결된 개정안은 갑자기 폐기됐고 학교장인 총장과 학장 등의 취임 승인을 취소하는 실질적인 해임권을 정부에 부여하는 조항을 신설해 의결함으로써 오히려 사학에 대한 감독권을 더욱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한 것.

그리고 그 법령에 근거해 당시 문교부 장관은 고려대와 연세대 그리고 이화여대의 정원 초과 모집을 구실로 해당 대학 각 총장의 승인 취소를 단행하려 했다. 물론 일부 사학들이 졸업장을 남발하고 회계 부정을 일삼는 등 무질서하게 학원을 운영하는 사례가 분명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사학에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6개 ‘범사학기관장회’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특히 사학의 특수성을 말살하려는 법임을 지적하고 성명서를 발표, 시행 보류를 요구했다. 이어서 전국 53개 사립대 총장과 학장이 11월 6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해당 신설 조항인 제20조 2항과 제54조 2항의 삭제를 요청했으나 11월 10일 개정법률안은 해당 조항을 삽입한 채로 통과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정안의 제안 이유는 폐기된 개정안과 동일하게 사학의 자주성 결핍에 따른 국가감독권 최소화와 사학의 자율성 보장이었다.

결국 이렇게 사립학교법 개정안 파동은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 후로도 문제가 되었던 두 개 조항 이외에 65년에 연세대와 고려대 휴업령의 법적 기초가 되었던 교육법 시행령 제76조 2항 등 법 체계를 문란하게 하거나 부적절한 규정에 대한 개정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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