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4·19 학생운동에 의해 고양된 민족의식은 5·16 군사쿠데타와 치욕적인 한일수교로 인해 민주사회와 자주 민족국가에 대한 열의를 더욱 불붙게 했다. 군사 독재 하에서 이같은 열망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문화 부활 운동
전통을 찾고 문화적 주체성을 회복하자는 강렬한 욕구가 일기 시작하던 60년대초, 구체적으로는 1961년 ‘민속경연대회’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1964년 ‘양주 별산대 놀이’의 무형문화재 1호 지정 등 정책적인 시도가 일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 문화 부활 운동은 대학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학인들은 무분별하게 수용되는 서양 문물에 대한 우리 전통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탈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63년 서울대에서는 ‘향토 의식 초혼굿’이나 이듬해인 64년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을 주도했던 젊은 지성들이 65년 문리대에 최초로 ‘민속극 연구회-말뚝이’를 조직하게 된다.
4년 후인 1969년 부산대에 ‘전통 민속 연구회’가 생겨나면서 70년대말까지 전국 거의 모든 대학에서 민속극을 연구하고 탈춤을 배우는 모임이 두어 개 이상씩 등장했다.
정치·사회적 반항의 몸짓으로
마당극도 대학의 동아리 활동으로부터 시작돼 대학생들에 의해 처음으로 탄생됐다. 마당극과 탈춤 등의 발생은 유신과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과 맥을 같이 했다. 시대적 상황은 외부에서 보다는 대학 내부에서 이같은 전통문화가 발생하기 적당했고 이 시기에 생겨나기 시작한 대학문화의 성격과 다르지 않았던 터라 대학에서 자연스럽게 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
그러나 대학 안에만 존재하고 외부에서 찾아볼 수 없다면 대학문화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일테지만 문화란 파생력을 갖고 있는 법이라 대학 바깥의 기층민들에게도 충분히 파고들 수 있었고 마당극이나 탈춤은 바로 그와 같은 기층민과 함께 호흡하기에 그야말로 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마당극과 탈춤 등은 연기자들만이 아닌 듣고 보는 모든 사람들이 신명이 나는 놀이라는 점에서 문화의 객체에만 머물러 있던 민중에게 스스로가 문화의 주체라는 의식을 깨닫게 해 주었다.
결국 우리 전통 문화 회복의 움직임은 60년대 대학의 새로운 문화가 됐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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