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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대학생활] 격동기를 살아온 나, 그리고 조류학 
5~6세의 어린 나이지만 일본의 통치 속에서 살아보았고 6·25로 이념때문에 피흘리며 죽어가던 사람들도 보았다. 4·19혁명과 5·16쿠데타 때 독재정권에 대항해 앞장서다가 감옥생활을 하는 사람도 그리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도 보았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너무나 고통스러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가슴아픈 일들이다.

그러나 조류학을 하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보니 자연은 평등하며 즐거움을 주고 자연은 경쟁자가 없으며 평화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자연 속의 새는 내 연구의 대상이자 내 인생의 가장 멋진 파트너이다보니 그것이 나를 조류학자로 만들었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학자로 태어나게 해주었다.

60세 초반이 되어 잠시 돌아보면 내 인생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조류학자로서 내 분야의 학문을 성공적으로 일구고 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어릴 때부터 동물과 식물을 좋아하다보니 취미가 연구가 되고 나는 학자가 된 것이다. 또 미약하지만 어디를 가나 ‘윤무부’ 하면 세상 사람들이 조류학자로서 알아봐 준다.

간혹 조류학자로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게 된다. 우선 끊임없는 연구의 역사가 필요하다. 어느 나라고 오래된 역사가 있어야 그 나라의 정치, 문화, 예술 등이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학문 또한 오랜 연륜이 있어야 좋은 논문이 나올 수 있다. 학자라면 어릴 때부터 취미가 연구와 학문이 되어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일생을 함께하는 조류학에서는 환경과 수많은 새들에 대한 관찰력 그리고 인내력이 없으면 진정한 학자가 되기 힘들다. 법학이나 경제학 등은 좋은 서적과 논문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를 한다면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겠지만 조류학이란 학문은 1년 4계절 전국 방방곡곡 날아드는 철새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뿐인가. 고생스럽게도 전국의 산골짜기마다 둥지를 찾아 번식상태를 조사하고 또한 도요새 철새들이 서해안 갯벌에 찾아와서 무얼 먹고 사는지 잠은 어디에서 자는지 왜 똑같은 곳을 찾아오는지 새들의 행동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새들은 이동하고 번식하는 일을 사람이 보라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조류학자라도 별 수 없다. 밤이나 낮이나 새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산과 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바로 조류학자의 연구실은 전국의 모든 산과 들과 강인 것이다. 아마 우리처럼 가장 넓은 공간의 연구실을 가진 학자도 없을 것이다. 결국 조류학자들은 어릴 때부터 새에 대한 취미와 경험, 그리고 넓은 조류들의 서식지를 찾아다닐 수 있는 스태미너가 필요한 것이다.

60대 초반에 즈음해 새가 살아가는 환경, 새에 관한 정보가 내 나름대로 머리 속에 가득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에 대한 기억 또한 내 머리 속에 남아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6·25가 일어나 빨갱이들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국군들을 잡아다가 뒷산의 말뚝에 얼굴을 가리고 묶어놓은 후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을 목격했고 또 한밤중에 거대한 경비정이 그들 빨갱이들을 마늘엮듯이 줄줄이 묶어서 우리 동네 먼바다에 나가서 던져버리는 것도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죽은 그 모든 사람들의 억울함과 두려움이 다 느껴지는 것 같다. 자기의 할 일을 못하고 일찍 생을 마친다는 것. 너무나 젊은 나이였던 그들의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할 수 있을까. 그들이 각 분야에서 훌륭한 전문가가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그 훌륭한 일꾼들을 단지 이념이라는 것 때문에 잃은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내 머리 속을 맴돈다.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경험하고 지켜봤으며 여러 정권이 내 삶을 지나쳐갔다. 그러나 나는 조류학 이외에 관심을 크게 다른 곳에 두지를 못했다.

난 여전히 나라가 어수선하고 정치가 복잡한 세상일 때에는 더욱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는 길은 항상 있는 법이다. 부모와 동료, 선배들의 충고가 보탬이 되기도 하지만 결정은 결국 내 스스로 하는 것이다. 새가 너무나 좋은 나머지 나는 새를 공부해서 과연 밥은 먹고 살 수 있을지 새를 연구해서 장가는 제대로 갈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도움이 되기는커녕 걱정을 끼쳐드리게 되지나 않을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결정을 내렸고 결국 나는 조류학자로서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세상은 격동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10년 후를 20년 후를 30년 후를 그리고 수백년 후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윤무부 경희대 교수 |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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