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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 필화 사건 
1970년대 독재와 반독재, 반민주와 민주의 상징이었던 ‘박정희’와 ‘김지하’.

유신독재 저항운동의 구심이었던 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는 ‘시’와 행동하는 ‘지성’으로 박 정권에 온 몸으로 항거하며 암울한 시대를 견뎌야 했던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라는 씨앗을 뿌린다.

권력 상층부 부정부패 고발

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으로 첫 옥고를 치른 그는 69년 ‘지하(芝河)’라는 필명으로 시 ‘황톳길’ 등으로 등단, 70년 특권층의 부패와 비리를 신랄히 풍자한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사상계’에 발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판소리와 현대시를 접목한 ‘담시’라는 새로운 장르로 선보인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 차관 등 당시 사회 지도층을 한일합방 때의 ‘을사오적’에 비유, 권력 상층부의 부정 부패상을 고발해 큰 반향을 일으킨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로 시작하는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 동빙고동에 모여 도둑 시합을 벌이는 내용으로 ‘오적’과 그들을 잡으러 갔던 ‘포도대장’이 결탁해 힘없는 백성을 잡아 가두었으나 결국 어느 맑게 갠 날 아침 날벼락을 맞아 죽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사흘 만에 부패사안들, 도둑질 방법, 호화판 저택의 시설이 단박에 그대로 떠올라” 썼다는 ‘오적’.

박 정권은 이 시가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한 것’이라며 반공법 위반 혐의로 김지하와 사상계 편집인 등을 구속하고, ‘사상계’를 폐간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오적 필화사건’이다.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가 53년 창간한 ‘사상계’는 60·70년대 반독재 투쟁의 선봉으로 당시 지식인 사이에서는 ‘사상계’를 보지 않고는 지식인 행세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독자층을 얻고 있었다. ‘오적’ 필화사건으로 인해 ‘사상계’는 통권 205호로 폐간된다.

박정희와 김지하의 대치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숨죽여 흐느끼며 ‘민주주의여 만세’를 썼던” 시인은 화려한 경제성장을 내걸며 영구 집권을 시도한 박정희와의 기나긴 싸움을 벌인다. ‘오적’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대치는 김지하의 투옥과 국내외 구명운동에 힘입은 석방, 도피와 체포,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과 석방 등 79년 박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된다.

김지하에 대한 탄압이 거세면 거셀수록 학생과 교수, 종교인, 언론인 등은 박 정권에 대한 저항의 수위를 높여갔고, 해외에서 국내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오적’의 등장은 민중·민족문화 운동의 첫 시작으로 대학가에는 우리 고유의 것을 찾아보겠다는 ‘민속의 붐’이 일어나 탈춤이나 판소리, 마당극 문화가 생겨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 담시 ‘오적’에 묘사된 ‘오적’(五賊)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 하고 목질기기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폭 오적의 소굴이렸다/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 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에 이르렀겄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귀띔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 샀다가 길 뚫리면 한몫 잡고/천원 공사 오원에 쓱싹, 노동자 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또 한놈이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건설이닷, 모든집은 와우(臥牛)식으로/

…셋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이빨 꼴이 가관이다/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뭉치/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 놈껜 사냥개라/

…넷째놈이 나온다 장성 놈이 나온다/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먹고/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일만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막사 지을 재목 갖다 제집 크게 지어놓고/

…마지막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산이닷/아사(餓死)한 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놓아 가미사마배알하잣!/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켄트를 피워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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