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의 암울한 1970년대 사회현실에서 젊은이들은 장발과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서구에서 시작된 유행의 물결은 70년대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해 명동과 종로, 신촌 등 도심과 대학가 주변에서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남학생과 미니스커트와 핫팬츠, 판탈롱 등을 착용한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회 퇴폐 풍조를 일소하라
박정희 정권은 ‘퇴폐적인 사회풍조를 일소한다’며 70년 8월28일 일제 단속에 나서 하루 만에 6백77명을 적발(?), 강제로 머리를 깎았다. 당시 경찰들은 타인에게 불안감과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장발족 단속에 나서 머리가 긴 남학생들을 검거, 머리를 짧게 깎은 뒤 훈방했으며, 끝내 머리 깎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은 ‘경범죄’를 적용해 즉심에 넘겼다.
경찰서는 때 아닌 이발소로 변해 경찰관들은 바리깡으로 학생들의 머리를 밀었고, 길에서는 단속경찰과 학생들 사이에서 장발 여부를 놓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술 더 떠서 경찰은 ‘외국인 장발족 입국 불허’ 방침을 천명, 공항이나 항구에서 머리를 깎지 않으면 입국시키지 않겠다고 밝혀 국제적인 웃음거리를 자초했다.
퇴폐풍조 단속은 보디 페인팅, 비밀댄스 홀, 공개장소에서의 고고춤 등까지 범위를 넓혀갔는데 사생활 침해와 인권 유린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71년 1월 박 대통령이 ‘히피족의 TV출연을 금지시켜라’고 지시하자 단속의 강도는 높아졌다.
71년 내부무는 ‘풍속사범단속법안’을 마련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원 이상의 벌금형을 가할 수 있도록 추진하기도 했는데 법안 내용을 보면 남녀 캠핑행위, 유흥지에서의 장구·꽹과리·마이크 등 소란행위, 장발과 누더기옷 등 히피행위, 전위예술을 빙자한 나체쇼 등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치마가 ‘짧다’ ‘아니다’ 실랑이
남학생들의 머리가 수난을 겪었다면, 여학생들은 치마 길이를 놓고 경찰관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가수 윤복희가 67년 처음 입고 귀국한 미니스커트는 열풍처럼 70년대를 강타했다. 경찰은 미니스커트 단속을 위해 30㎝ 자를 들고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들을 잡아 세워 길이를 쟀다. 거리에서는 ‘처벌 대상이다’ ‘아니다’를 놓고 여학생과 경찰들이 논란을 벌여야 했다.
당국의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유행에 대한 모방과 머리카락도 마음대로 못 하는 강압적인 시대 상황에 대한 반항심 때문인지 장발족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단속 경관은 ‘도벌군’, ‘자연파괴자’란 별칭이 붙은 반면 장발족은 ‘인간 상록수’로 지칭됐으며, 한발 나아가 ‘예수’로 불리기도 했다.
미니스커트보다 더 짧은 ‘핫팬츠’와 지금의 ‘배꼽티’가 인기를 얻었으며, 무릎 길이의 롱부츠와 길거리를 쓸고 다닐 정도로의 ‘나팔바지’가 유행의 뒤를 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72년 10월말까지 경찰이 적발한 퇴폐풍조 사범은 10만여명이 넘었다. 장발족은 8만3천여명이나 머리를 깎였고, 1만2천여명은 즉심에 회부되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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