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정부의 의·약분업에 반발한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 병원이 집단 폐업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논란의 초점은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파업을 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것이었다.
의료 파업에 대한 논란은 70년대에도 있었다. 봉급 인상과 신분 보장을 요구하는 대학병원 인턴과 수련의 집단 사표로 떠들썩했던 일명 ‘수련의파동’이 연례적으로 되풀이됐던 것이다.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면서도 박봉에 시달렸던 열악한 수련의들의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것으로 대학 부속병원의 운영 문제 등 의료 정책상 누적된 문제점을 노출시켰던 의료 파동이었다.
봉급인상·처우개선 요구
71년 6월16일 오전 국립의료원 인턴 32명 전원은 월급 1만9천원을 50% 인상하고 의무직 수당 1만원을 지급할 것 등을 요구하며 집단사표를 제출한다.
대학병원 인턴과 수련의들이 봉급 인상과 신분 보장을 요구하며 병원을 떠난 ‘1차 수련의 파동’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국립의료원 인턴 파업으로 시작된 의료 파동은 서울의 각 대학종합병원 인턴과 레지던트들로 확대돼 전국의 병원이 마비 상태에 빠진다.
당시 국·공립대 인턴·레지던트들은 △인턴은 일반공무원 3급을, 레지던트 3급갑 대우를 할 것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을 보장해 줄 것 △의무직 수당을 지급해 줄 것 등을 요구했다.
정부당국은 병원을 떠난 인턴·레지던트가 복귀하지 않을 경우 사표를 수리하겠다며 강경책으로 맞섰으나 동조 파업만 확대시켰을 뿐, 사태 해결의 기미를 찾지 못했다.
인턴 사표 제출에 동조한 서울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등 국립대병원 레지던트 4백명은 7월6일 보수개선 요구를 내걸고 48시간 총파업에 돌입했고, 7월13일에는 사립대 부속병원 및 일반병원의 수련의들도 시한부 동조 파업을 벌여 전국 사태로 번졌다.
결국 당국은 국립대부속 병원 인턴들에게 공무원으로서의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을 약속, 사태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2차 수련의 파동
하지만 처우개선 약속이 이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9월4일 서울대 부속병원 인턴 39명 전원이 월급 인상, 공무원 신분보장, 해외여행 억제 철폐 등 3개 요구조건을 다시 내걸고 병원을 떠나는 사태가 재발했다. ‘2차 수련의 파동’이 발생한 것.
인턴들이 떠나가자 서울대 레지던트 1·2·3차 1백11명 전원이 무기한 동조 파업 돌입에 돌입했고 연세대,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국립의료원 등 수련의들도 이에 동조, 집단 사퇴한다.
의료 파동이 전국으로 확산돼 병원의 기능이 마비되자 교수들이 중재에 나섰고 정부는 결국 3만~4만원선의 월급과 수련의 기간 1년 단축, 해외여행제한 완화 등 개선책을 내놓고 72년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처우 개선 약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해 겨울 국회예결위에서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입력 : 2004.01.15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