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서울대. 하지만 서울대가 처음부터 일류대, 특히 종합대로서 면모를 갖췄던 것은 아니다. 1975년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대는 대학본부와 각 캠퍼스가 가깝게는 2㎞에서 멀게는 45㎞까지 서로 분산돼 있어 의사소통 및 교류에 상당한 불편이 있었던 것은 물론, 동일과목과 시설들이 단과대학별로 중복 개설되는 등 비효율적인 교육 구조를 갖고 있어 대학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서울대 발전 10개년 계획하지만 서울대는 ‘서울대를 종합부지로 이전하고 종합화한다’는 내용의 ‘서울대학교발전 10개년계획’이 71년 최종적으로 발표되면서 명실상부한 명문대 건설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이 발전계획안에는 관악산 부지 이전을 비롯, △교육기구를 기본 과학 분류에 의한 3개 과학원과 전문 학문 분류에 의한 대학으로 구성 △최고관리기구로 총장위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학무회의 신설 △신입생 선정에서 입시성적 80%, 출신학교 성적 20% 평가 △영역별로 현 학과를 대폭 폐합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종합발전계획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관악산 부지 이전. 정부는 관악산 부지에 15개 단대와 3개 특수대학원을 설치하는 안을 확정하고 서울대 교수를 포함한 건설본부 요원과 외국인 용역단의 공동작업으로 ‘종합건설계획’을 마련, 71년 4월 2일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농대 연습림과 관악산 부지를 합하여 총 대지 6백7만 평의 관악캠퍼스를 77년까지 건설한다는 목표로 시작된 공사는 74년 3월 30일 1단계가 완성돼 인문대, 사회대, 법대 등의 인문사회관과 학생회관, 대학본부 등이 들어서 75년 첫 강의가 진행됐고 76년에는 2단계 공사 마무리로 약학관, ROTC관 등이 세워졌다. 그러나 당초 77년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마지막 3단계 공사는 소요예산 증가에 따른 경비조달 문제 등 여러 문제가 겹쳐 최종적으로는 92년에 와서야 완성을 보게 된다.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하라서울대는 관악산 캠퍼스 건설로 외형적인 종합화를 달성해 나가는 반면, 대학행정, 교육 등 내형적인 종합화도 실시해 진정한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데 당시 종합캠퍼스 기공식에 바쳐진 어느 시에서 “겨레의 뜻으로 기약한 이 날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종합화 계획이 반대 여론 없이 진행됐던 것은 아니다. 종합화 계획이 발표된 후, 당시 유기천 서울대 총장은 “현 국력으로 1백억원이 투입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며 “화려한 외국대학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사고방식은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대학운영에의 반성’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서울대학 건설 10개년계획이라는 거창한 청사진에 교수들이 이렇다 할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 까닭은 10년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절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서울대는 그 이후에도 83년에 ‘서울대학교 발전 10개년 계획’, 87년에 ‘서울대학교 발전 장기계획(87~2001)’을 발표하는 등 발전을 위한 계속적인 계획과 수정을 진행시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