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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의 문을 열다 
‘남녀공학 입학=결혼’이라는 은어가 있었던 1970년대 초, ‘금남의 배움터’인 여자대학에서 학교 당국의 허가아래 수업을 받아 화제를 뿌린 남학생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금남의 배움터에 당당히 입성한 이들은 72년 3월22일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강윤호 교수의 ‘한국어 음운론’을 수강한 2명의 연세대 대학원생이었다.

이대에서 남학생 첫 수강

당시 동아일보는 ‘금남의 집에 첫 남학생’이란 타이틀의 기사에서 “‘상호 교환 수강제도’에 따라 이화여대에 수강신청을 냈던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두 명의 남학생이 22일 오후 강의를 받기 위해 등교, 86년 만에 처음으로 ‘금남의 배움터’에 남학생이 들어갔다. 이날 두 남자 대학원생은 도서관 2층 5호 세미나 강의실에서 이대 대학원생과 셋이서 강윤호 교수의 ‘한국어 음운론’을 수강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의 수강이 가능했던 것은 연세대-서강대-이화여대 등 3개 사립대학이 72년 1월11일 대학원간 학점교환제 도입을 결정, 신학기부터 이 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사상 처음 시도된 학점교환제는 당시 교육계와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신촌지역에 위치한 3개 대학은 기독계 학교로 지리적으로 가깝고 대학 수준이 비슷하다는 점 등을 활용해 대학원생들이 서로 다른 대학의 원하는 교수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원간 학점교환제

이는 정부 방침에도 부응하는 것으로 문교부는 70년대 들어 대학원간의 폐쇄성을 해소시키고 제한된 교수 및 시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모든 대학원간에 학점교환 내지 교류제를 실시하도록 각 대학에 시달했다.

당시는 대학원 학생수가 크게 늘던 때로, 65년 3천8백여명에 불과했던 대학원 학생수는 74년 1만2천3백여명으로 300%라는 놀라운 증가율을 보였다.

시행 첫 학기에 생물학·국어국문학·경제학·사회학 등 4개 학과로 출발, 취득학점을 1학기 총학점의 3분의 1인 4학점 내외로 제한한 3개 대학원 학점교환제는 이후 75년에 28개, 80년에 63개, 85년에 75개, 90년 66개, 92년에 77개학과로 늘어났다. 교환과목수도 75년 42개에서 92년 1백66개 과목으로 꾸준히 증가했으며, 교환학생수도 74년 1백7명에서 92년 5백17명으로 증가했다.

대학간 벽을 허물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신촌지역 3개 대학에서 출발한 학점교환제는 이후 인하대-중앙대-숭실대에 이어 포항공대-이화여대, 고려대-연세대 등으로 확산됐으며, 연세대-서강대-이화여대는 대학원에 이어 현재 학부간 학점교환제 시행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남녀 성에 따라 직업군이 확연히 구분됐던 7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77년 1월 서울대 간호학과에 남학생이 입학에 눈길을 끌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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