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문교부의 고등교육개혁사업이었던 ‘실험대학’은 구미 선진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대학교육 개혁을 실험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취지에서 73년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실험대학 운영을 일부 대학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후 전 대학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졸업 이수학점 감축 △신입생 계열별 모집 △부전공제와 복수전공제 채택 등을 골자로 했다.
구미 선진국 제도 모방
지난 52년 이래 제도화된 졸업학점 1백60학점을 실험대학에 한해 1백40학점으로 낮춰 교육과정 개선을 꾀하고 기존의 학과별 정원제를 지양하고 대학별·계열별 정원제를 택할 수 있게 했으며, 학생들의 부전공·복수전공제를 허용한 것으로 선정 대학에는 시설 및 재정을 지원해 주었다.
고려대(이공대 공학부)·연세대(가정대)·이화여대(문리대)·중앙대(정경대 및 경영대)·서강대(경상대)·숭전대(공대를 제외한 전대학)·인하대(2부대학 제외한 전대학)·성심여대·울산공대·전남대(상대 및 사범대) 등 10개교에서 시작된 실험대학은 74년에는 서울대 등 6개 대학이 추가로 선정되었다.
프로그램도 확대돼 74년부터 능력에 따른 학점 취득과 계절학기제 등이 도입됐으며, 77년에는 대학평가제 실시 등이 추가되었다. 77년 영남대 등이 참여해 29개로 늘어난 실험대학은 79년에는 총 74개 대학 중 39개 대학(전학생의 75%)으로 확대되었으며, 80학년도에는 동국대 등 43개 대학으로 확대되었다.
문교부는 78년 실험대학 운영 5개년 중간평가에서 실험대학의 성과로 대학 운영의 자율성이 증대되고 교양과정 변화, 면학 분위기 조성, 대학간 선의의 경쟁이 유발된 반면, 법·행정적 조치 미흡, 학생지도의 어려움, 조교·도서 지원 미비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실험으로 끝난 실험대학
교육시설 확충과 교육방법 개선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된 계열별 모집은 학과별 장벽을 없앤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학생지도의 어려움과 인기학과로의 집중을 야기해 결국 학과별 모집으로 되돌아갔다.
졸업학점 감축은 당초 목적인 교육과정 운영의 심화를 가져오기보다는 사립대학의 경비 절감의 방편으로 전락, 제대로 성과를 내기 어려웠고, 부전공제는 기업체 등의 인식 미비로 유명무실화되고 말았다.
실험대학은 79년부터 명칭을 ‘학사 개혁 대학’으로 바꾸게 되었고 제5공화국이 들어선 후 81년부터는 졸업이수 학점 감축이 의학계, 약학계 및 특수화된 공과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 적용됨으로써 실험대학 정책은 막을 내린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던 70년대, ‘실험대학’은 대학이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실험’이 아니었다. 대학이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실험대학 ‘참여 여부’이었을 뿐이었다. 교육주체의 자율성이 결여된 개혁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실험이었던 셈이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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