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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짚어보는 반세기의 발자취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성균관이 문을 연 지 이미 600년이 넘었다. 그후 근대 개화기부터 숭실 연희 세브란스 등 사학이 비록 대학 명칭은 제대로 쓰지 못했어도 우리 고등교육의 문은 이때부터 새로운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며 발전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경성제국대학이 있었다.

그후 본격적인 대학 발전은 해방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많은 대학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지만 그 동안에는 넘어야 할 험준한 산도 많고 건너야 할 강도 많았다. 지금 우리 나라는 대학 수만도 376개요 학생수가 360만명 정도에 이르고 있지만 그것은 비옥한 땅에 알맞은 기후에 훌륭한 경작자들에 의해서만 이룩된 것이 아니었다.

해방은 우리의 희망에 대한 환상적인 수식어일 뿐이었으며 조선 총독부 옥상의 일본기가 내려지고 새로 게양된 것은 태극기가 아니라 미국기였다. 그리고 미국의 밀사는 8·15 전날 미리 총독부 정무총감을 만나서 정전 후에도 일본 관리들에 의한 행정조직을 그대로 유지할 의사를 전달했고 그것은 점령 후에도 잠시 그대로 이어졌다. 한국에 대해서 또는 교육행정에 대해서 문외한인 락카드 대위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총독부 학무국장으로 출세한 친일파 엄상섭을 데리고 그려 나간 8·15 이후의 한국의 교육 청사진은 이렇게 한심한 사람들 손으로 만들어졌다.

그후 국립 서울대학이 그렇게 큰 출산의 진통을 겪은 것도 ‘국대안’ 자체의 문제성이 아니라 이같은 배경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출산의 진통이 겨우 가라 앉자 마자 이번에는 전쟁이 다시 거의 모든 신생 대학의 싹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국대안 반대운동 폭풍의 근원이 분단에 있었던 것처럼 묘목으로 자라기 시작한 신생 대학들을 밟아 버린 것도 분단이다.

그렇지만 판자집이나 천막집의 전시 연합대학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 대학은 다시 무서운 힘으로 자라 왔다. 수십년동안 독재정권에 맞서며 민주화 운동의 보루가 되고 이 때문에 번번이 교문을 닫으면서도 우리 대학은 눈부신 발전의 발걸음을 잠시도 멈춘 일이 없다.

그동안 이같은 발전의 배경에는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숨어 있었을까? 괴롭던 일들도 세월의 강물에 씻겨지고 나면 그리운 추억이 된다. 우리 한국대학신문은 이미 고인이 되어 가는 많은 증인들을 찾아 다니며 그런 이야기를 채록하고 일부를 ‘대학비사’로 연재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해방후부터 최근까지의 가장 대표적인 사건만 100개를 모아서 우리 대학의 지나간 역사를 조감해 보기로 했다.

지나온 발자취를 회고해 보면 교육에 대한 우리 민족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게 된다. 오늘의 한국의 기적을 누가 이룩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고등교육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그 향방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책이 그런 의미에서 이 나라 대학교육을 생각하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우종 한국대학신문 주필 |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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