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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 물린 학문 자유 
‘1976년 시행 첫해, 교수 3백16명 탈락, 이후 30여년간 총 5백여명 탈락….’

70년대 유신시절 군부가 갑작스레 도입한 교수재임용제가 지금껏 남긴 탈락자 수치이다. 서구의 많은 선진 대학들도 교수들의 연구열을 불러일으키고자 이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지만 우리의 경우엔 그런 의도로 도입한 것만은 아니었다.

교수 재임용제도 도입

1975년 7월 국회는 의원입법으로 교수재임용제도를 도입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문교부는 같은해 2학기부터 새로 임용되는 교원에게 이 제도를 적용하도록 시달하고, 사립대에는 정관을 개정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28일 개정된 법에 따라 각 대학마다 교수재임용제가 실시된다.

그 취지는 연구 실적이 모자라거나, 교수 능력, 자격이 없다거나 근무평점이 기준치를 밑도는 교수들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것.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적용되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교육학자 손인수는 이에 대해 “(당초 도입 취지처럼) 재임용에서 탈락된 교수는 극히 드물고, 반정부활동이라든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활동에 적극적이던 교수들과, 재단 또는 학교측의 부정·비리를 폭로한 교수들을 추방하는 데 더 많이 악용됐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가 말하는 이른바 정치 교수들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즉 박정희 정권이 대학교수들의 자유스런 언행에 얼개를 씌운 일종의 교수 통제장치라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박정희 정권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드러나던 시기였다. 특히 대학가에서는 71년 서울대 문리대 교수들이 대학의 자치와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이른바 ‘8·18건의’ 이후 대학마다 대학의 자율성 보장, 연구지원 강화,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는 교수들의 ‘자주화선언’이 잇따르던 때였다.

교수 재임용제도의 악용

따라서 교수들의 높아지는 목소리에 위기 의식을 느끼던 유신체제와 사학재단이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이 제도를 서둘러 급조해냈다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일부 사립대의 교수재임용 과정에서도 평소 재단에 비판적이거나 과거 총장과 불화가 있었다는 이유로 탈락됐다고 주장하는 교수들이 많았다. 성균관대 교수 오현위 등 5명과 경희대 교수 유영준 등 4명이 그 대표적인 예.

성균관대 탈락교수는 거의가 1974년 10월 학내 분규때 재단측에게 학교운영의 자주성 보장과 경상비 보조, 시설 투자 및 장학금의 증액 등을 건의했던 ‘대학개혁 심의원회’ 회원들이었다. 경희대의 경우도 평소 교수의 처우개선을 주장한 교수들이었다.

모 대학 탈락교수에는 박모 교수 등 유능하다고 알려진 철학과 교수 2명이 포함돼 있어 의외라는 반응을 보여줬는데, 이들 두 교수는 총장이 당시 내놓은 저서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자기들이 썼다고 어느 사석에서 한 말이 총장의 귀에 들어간 것이 탈락의 결정적 이유가 된 것 같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교수재임용제는 지난 30여년간 대학가에 무수한 갈등과 구설수를 쏟아내게 한 제도지만, 결국 헌법재판소가 2003년 3월 “교수재임용제가 재임용 거부사유 및 사전·사후 구제절차를 마련하지 않아 헌법의 교원지위 법정주의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그 역사를 마감할 운명에 처하게 됐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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