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령과 휴업령으로 대학 문이 굳게 닫히고 캠퍼스가 황폐화된 1970년대 초 대학가 주변에는 이른바 ‘제2캠퍼스’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미라보 다리건너/목조 2층 건물/폴·발레리의 시처럼/풀잎되어 젖은/삶의 비애, 삶의 순수/한잔 찻잔에 중량을 재고/낯선 미소, 샹송, 두만강 푸른 물/오가는 사랑 붙잡아 볼까”.
이 시를 낳게 한 주인공은 동숭동에 자리한 ‘학림다방’. ‘서울대학교 50년사’에 따르면 동숭동 시절 문리대 앞의 ‘학림다방’과 법대와 미대 앞의 ‘낙산다방’은 대학가의 전설을 가득 안고 있는 명소로 사랑받았다. 문리대 앞에 위치한 학림다방은 학생들 사이에서 ‘문리대 제25강의실’로 명명되었고, 낙산다방은 ‘미대 제5강의실’로 불렸다.
또 다른 캠퍼스 ‘다방’
캠퍼스가 황폐화된 시절, 철학과 정의를 논하고 사랑을 이야기했던 ‘다방’이 또 다른 캠퍼스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가에 불기 시작한 ‘미팅’ 바람 때문이었다.
명동의 ‘초원다방’, 광화문의 ‘청자다방’ 등은 미팅의 명소로 이름을 날렸고, 도심의 다방과 생맥주집은 교복이나 양복을 빼입은 학생들이 좌석을 점령했다.
입학기념 미팅에서 피보기 미팅, 줄미팅, 고고미팅, 그룹미팅, 팀미팅 등 갖가지 미팅 방법이 동원되었다. 집회 원서를 내지 않아도 모임이 가능했던 탓인지 미팅은 교내 집회보다 몇십 배 성황을 이뤘다.
71년 5월14일자 ‘한국일보’는 ‘이성교제의 광장 ‘그룹 미팅’이란 기사에서 대학생들의 미팅문화를 소개한다. 산 경험을 터득할 수 있다는 긍정론에서 나쁜 것은 없는 무해무익하다는 의견, 비용이 많이 들고 순수성을 상실, 남자들의 희롱장이 됐다는 부정적인 의견까지 당시 학생들의 미팅에 대한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이 기사는 학생들의 공통된 불만으로 언급하면서 마무리한다.
‘가장 순수해야 할 미팅 자체가 철저하게 타산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같은 대학이라도 남자 대학은 상대, 법대, 공대의 순으로 여대생에게 인기가 있으며, 여대의 경우 문리대, 사범대의 순이라는 것.’
혹시나 … 역시나
70년대 중반 이후에도 일일찻집이나 미팅이 여전히 인기를 누렸다. ‘혹시나 하고 갔다가 역시나 하고 돌아온다’라는 격언을 남긴 미팅은 ‘고팅’이 ‘개빙고’, ‘중빙고’, ‘종빙고’라는 이름으로 월례행사처럼 진행됐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D데이’는 데이트날, ‘특허냈다’는 애인이 있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여학생을 잘 낚는 남학생은 ‘보라매’, 여러명과 사귀는 학생은 ‘문어다리’, 심심풀이로 하는 데이트는 ‘오징어 데이트’ 또는 ‘땅콩 데이트’로 지칭되었다.
74년 4월 개봉해 최대 인파를 동원한 최인호 원작의 영화 ‘별들의 고향’ 여주인공의 이름인 ‘경아’는 ‘술 잘 마시는 여학생’을 지칭하는 말이었고, ‘여학생이 담배 피우는 것’을 ‘김밥 먹는다’고 표현했다.
대학가 축제에서는 강강수월래, 차전놀이, 씨름대회, 댄싱파티, 캠프파이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으며, 학생들의 취미활동으로 테니스, 사격, 수영, 카드놀이 등이 등장한 시기도 70년대였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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