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발전을 가로막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재단 분규이다. 분규를 겪은 대학들은 통상 크고 작은 후유증에 시달리며 심지어는 생존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이는 70년대도 마찬가지. 성균관대와 우석대(당시 우석학원 우석대로 66년 종합대학으로 출범, 현 전북 소재 우석대와는 다른 학교임)가 대표적이다. 재단분규로 성균관대는 삼성문화재단의 경영 포기, 우석대는 고려대로의 흡수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 재단 분규가 얼마만큼 대학에 치명타가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균관대와 삼성
1965년부터 성균관대의 운영을 맡기 시작한 삼성문화재단은 적극적인 투자로 67년 12월 유학대학 신설, 71년 1월 국내 최초의 무역대학원 신설, 76년 2월 수원 제2캠퍼스 건설 착공 등 시설 확충과 76년 3월 실험대학제도 도입 등 학사운영 개혁을 일궈내 성균관대의 비약적인 성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77년 10월 1일 성균관대 재단 분규와 관련, 대학 운영 포기를 문교부에 공식 통보함에 따라 성균관대 경영권은 78년 12월 7일부로 봉명그룹으로 넘어가게 된다.
재단 분규로 삼성을 잃은 성균관대는 비록 봉명그룹이 그 뒤 경영권을 인수받아 81년 8월 자연과학캠퍼스에 이과대학, 공과대학, 농과대학 및 약학대학의 교사와 학생회관을 준공, 명륜캠퍼스와 함께 복수캠퍼스의 면모를 갖추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였지만 91년 봉명그룹이 경영에서 물러남으로써 ‘침몰’직전까지 몰리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근 5년간 암울한 시대를 보내던 성균관대는 96년부터 삼성이 다시 경영을 맡아, 새로운 도약기를 맞고 있다.
우석대의 비극
70년대 또 하나의 재단분규인 우석대 사태는 재단의 불합리한 경영으로 빚어진 비극이었다. 69년 당시 김두수 재단 이사장은 자신이 운영하던 낙산기업이 빚에 몰리자 김영택 총장 명의로 보증어음을 남발, 결국 학교 측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채권자들의 진정 소동이 격화되자 문교부는 70년 감사를 실시, 학교 측이 기업체에 채무보증을 해 준 것은 사립학교법과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위반 사항이라 판단해 이사장 취임 승인을 취소하고 총장 해임을 요구했다. 이에 총장과 이사장이 해임되고 재단 이사들이 자진 사퇴, 우석대는 관선이사 체제로 들어갔다.
이후 정부는 파산에 처한 우석대를 구하기 위해 7억원을 기부하면 대학 뿐 아니라 부속병원 및 중·고교도 소유한 25억원 시가의 우석학원을 살 수 있다며 새 주인을 공개 물색했고 이에 재벌과 타 학교들의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다. 우석대는 5차 관선이사가 파견된 71년에 고려대로 합병되는 것으로 결정 나면서 정상화의 길을 찾게 된다. 하지만 우석대 사태는 당시 김두수 이사장의 잘못된 경영으로 인해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할 수 있었던 기회가 송두리째 날아가고 타 학교에 병합될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역사를 남기게 됐다.
70년대에는 이밖에도 72년 3월에 서울 서라벌예대가 재정난으로 중앙대로 인수되기도
했으며 78년 12월 대한항공은 한국항공대를 인수하기도 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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