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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요제 
77년 9월3일은 지금까지 수많은 대학생 출신 가수들을 배출한 등용문인 대학인의 잔치 ‘대학가요제’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날이다. 토요일인 이날 밤 정동 MBC 문화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가요제는 2천여명의 방청 대학생들이 참석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많은 사람들은 대학문화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며 경이롭게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이 가요제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오면서 대학과 대중문화가 접목되고 대학의 음악적 실험이 대중적으로 검증 받는 장이 되고 있다.

대학과 대중문화의 접목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샌드 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당시 젊은 세대였던 현재의 40대로부터 지금도 노래방 인기 곡목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이 세대가 대학가요제를 보며 가졌던 문화적 충격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학가요제에 대한 폭발적 반응의 징후는 본선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예선을 진행하면서 진작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선 절차를 진행한 MBC의 여러 지방사에서 행사장인 체육관의 문과 유리창이 몰려든 관중 때문에 깨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또 MBC 임원들에게는 입장권을 요청하는 고위 인사들의 청탁이 빗발쳤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대학가요제의 기획 단계에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문화방송 30년사’에 따르면 당시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는 대학문화와 방송과의 접목이 방송의 질과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 끝에 창작가요제를 착안했지만 어수선한 시국 상황에서 참여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본 편성 파트는 난색을 표했다는 것.

그룹사운드 결성 붐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대학가요제는 높은 호응 덕분에 계속 열리게 됐고 이후 해변가요제 등 대학생 대상의 가요제가 잇따라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7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의 인기몰이에 대해 가요평론가 이영미는 “대학가요제와 그 뒤를 이은 동양방송의 해변가요제는 젊은층이 가요의 주요 수용층이었고 청년문화의 세례로 그들의 취향이 이미 크게 달라졌는데 가요계는 심한 공백으로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젊은 감수성에 맞는 대중가요를 상업적 이벤트를 통해 생산해내고자 하는 상업적 의도와, 대마초 파동과 정치적 억압 등으로 ‘뻥 뚫린’ 젊은층의 마음을 대신 충족시켜 줄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정치적 배려가 맞아 떨어졌다”고 그 사회사적 의미를 설명했다.

대학가요제 성공은 대학가의 문화에도 적잖은 변화를 몰고와 대학가와 음악계에는 그룹사운드 결성 붐이 조성되고 송골매, 옥슨80 등 밴드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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