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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대가 낳은 유행어 
‘긴급조치 세대’로 지칭되는 1970년대 학번들은 잦은 휴업령과 검거·단속으로 점철된 암울한 시대 상황을 조소하는 유행어를 쏟아냈다.

72년 10월 국회가 해산된 뒤 유신헌법으로 시작된 유신체제하에서 긴급조치는 74년부터 79년 유신체제 몰락까지 아홉 차례나 발표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가에는 시국 상황과 관련된 유행어들이 퍼져 나갔다.

시국 관련 유행어

‘서울대학교 50년사’에 따르면 71년 10월에 내려진 위수령으로 학내 분위기가 크게 냉각되자 학생들이 약간만 모이면 “집회허가 받아 오자”라는 농담이 나오고 “잘리지 않으려면 학회 활동한다고 까불지 말고 기타나 치고 술이나 먹어라”라는 탄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10인이상의 집회는 학교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학칙 조항에 따라 10여명의 학생이 사적으로 모인 자리에서는 ‘비 신고집회’, ‘불법집회’라는 농담이 나왔다.

70년대 발행된 ‘동아연감’에 따르면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따온 ‘파르라니 깎은 머리’는 ROTC의 대명사로 모범 학생들을 꼬집거나 자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위수령 후 신체검사 통지서나 징집 영장이 우송돼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등기왔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또 정부가 구속인사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분위기가 먼저 조성돼야’한다고 말한 대목에서 비롯된 ‘분위기 조성’이란 유행어가 사회적으로 널리 퍼졌으며,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학내 시위로 불붙은 학원사태는 ‘일련의 사태’로 불렸다. 일련의 사태는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인해 신문 하단의 1단 기사로 처리되곤 했다.

‘스트리킹’도 대학가에 등장

스스로를 ‘눈물의 세대’ 또는 ‘최루탄 세대’로 부른 학생들은 페이퍼포그를 ‘대형 F킬러’라고 비웃었다.

74년 경희대 서정범 교수가 조사한 것을 보면 학생들은 ‘양심(良心)’을 ‘양심(兩心)’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겉과 속이 다른 두 마음을 품은 것이 요즘은 오히려 양심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속내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간첩단 사건과 학원사태로 위력을 떨친 ‘중앙정보부’는 흔히 ‘남산’이라고 불렸지만 학생들은 ‘행동과학연구소’라고 명명했다.

미국의 대학단체가 74년 4월 닉슨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구호로 ‘벌거벗은 진실을 밝히자’ ‘사실을 밝히자’로 정하고 이 구호에 맞춰 데모학생들이 벌거벗고 뛴 것에서 시작된 ‘스트리킹’이 국내에도 상륙했다.

70년대 일부 젊은이들은 심심치 않게 스트리킹을 감행했는데 74년 4월13일 오전 8시15분쯤 안암동 고대 정문 앞에서 22세 가량의 청년 1명이 스트리킹을 했다. 이후 염치 불구하는 사람들을 ‘스트리커’라 했고 못할 일을 눈 감고 해내는 몰염치한 행위를 ‘스트리킹 한다’고 했다. 이 말은 해프닝 이상으로 막된 세상을 꼬집기에 어울리는 유행어였다.

70년대 말, ‘자연보호’가 강조되면서 정치 현실을 비꼰 ‘인간보호’라는 말이 쓰이기도 했다. 자연보호에 앞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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