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칼럼/이슈 > 대학50년사

졸업정원제의 음모 
신군부가 무자비하게 총칼만 휘두를 줄 아는 건 아니었다. 이들은 집권을 위해 민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는 시도도 병행했다. 과외금지와 대학의 졸업정원제를 주축으로 하는 7·30 교육개혁안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취지에서 단행된 것이었다.

‘국보위’의 교육개혁

1980년 7월30일 정부는 대학입시 본고사를 폐지하고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는 ‘대학입시제도 개혁안’과 과외를 금지하는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언론은 ‘해방 후 최대의 교육개혁’, ‘망국과외 철폐’ 등으로 이 내용을 대서특필했지만, 교육학자나 교육평론가들은 이 조치를 ‘교육쿠데타’ 혹은 ‘교육테러’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당시 국보위가 단행한 교육혁신 조치는 전인교육과 정신교육, 과학교육, 평생교육을 주요 골자로 하여 △본고사 폐지와 고교내신성적 반영을 통한 대학입시 개혁 △졸업정원제 실시 △대학입학정원 확대 △전일 수업 대학 운영 △교육대학 4년제 개편 △방송통신대학 확충 △과열과외 추방 등이었다.

특히 ‘7·30 교육개혁 조치’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졸업정원제의 실시였다. 정부는 졸업정원제 실시로 세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고자 했는데,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기업이 요구하는 고급인력을 양성하고, 대학 정원보다 신입생을 더 많이 뽑아 입학은 쉽게 하되 졸업은 어렵게 해 과열된 입시경쟁률을 낮추고, 입학후 경쟁을 통해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을 이루겠다는 것 등이었다.

졸업정원제 실시 첫해인 1981년도의 대입 인원은 전년보다 10만 1천45명이 늘었고, 이 중 4년제 대학 정원은 7만 3백50명이 많은 18만 7천50명이 됐지만 졸업정원은 2만 7천2백명 증원에 그쳐 결국 그해 입학인원 중 4만 1천5백30명은 졸업에서 탈락하게 됐다.

정치적 저항의 무력화?

이같은 졸업정원제 실시의 명분은 그럴 듯 했지만 당시 정부가 노린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려면 무서운 학점 경쟁에 돌입해야만 했으니 시위에 참여할 시간과 노력을 딴 곳으로 돌려 학생들의 정치적 저항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늘어난 학생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제반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졸업정원을 전제로 한 대학의 팽창은 교육의 질적 저하와 졸업생 취업난을 유발시켰으며, 취업의 불이익은 주로 비명문대와 지방대, 그리고 여성들이 받았다.

7·30 교육개혁은 대학입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졸업정원제를, 국민 경제에 압박을 가하고 국민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던 과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외금지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단기적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교육 그 자체의 개선보다는 정권 안정 추구라고 하는 교육외적 동기에서 만들어진 7·30 조치들은 결과적으로 5공이 끝나기도 전에 정책 목적 달성에서 차례차례 실패로 드러나게 됐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사 변칙 운영으로 중도 탈락을 피하기도 하였으나 중도탈락자의 자살소동으로 사회문제화되기도 하였다. 이후 1983년에는 졸업정원제의 수정을 위한 11개 조항의 개선책이 시달되었고, 마침내 1984년에는 30% 초과 입학의 기준을 각 대학에 자율 일임하는 조치가 취해져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었고, 결국 88년에는 졸업정원제가 완전 폐지되고 입학정원제로 환원 조치되고 말았다. 
입력 : 2004.01.15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