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2월 21일, 전두환 정권이 발표한 ‘학원자율화’ 조치는 우리나라 교육사에 커다란 새로운 획을 긋는 사건으로, 이날 발행된 도하 모든 신문은 온통 ‘학원자율화’ 기사로 메워졌다.
훗날 이를 두고 학생시위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대응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정부의 자체판단과 미국 정부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당시 정권이 유화정책의 용단을 내린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처벌 위주에서 선도 위주로 전환
이날 발표된 정부의 학원자율화 조치의 주요 골자는 △대학 내에 공식, 비공식으로 주둔하고 있는 일체의 공권력을 완전히 즉각 철수한다 △시국문제로 제적 조치된 모든 학생에 대하여는 초학칙적인 조치로 본인의 희망에 따라 다가오는 신학기에 전원 복교 조치한다 △정치적 차원에서 해직된 시국관련 교수는 전원 초법적으로 복직 조치한다는 것 등이었다.
또 이때까지 획일적인 처벌위주이던 학원 대책을 선도위주의 예방에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전환키로 했다. 문교부는 이날 전국 1백15개 대학 총·학장(교육대, 방송통신대 포함)회의를 소집, 이같은 방침을 시달했다.
이후 학원 소요와 관련되어 복역 중인 학생 3백38명이 석방돼 대부분의 학생이 풀려나게 됐고 1980년 5·17 이후 학원사태와 관련, 제적된 전국 65개 대학 1천3백63명에 대해 84년도 신학기부터 복교를 허용키로 했다.
또 83년 12월 5일에 1980년 계엄기간 중 전국 각 대학에서 강단을 떠난 해직교수 86명의 복직에 대한 처리 지침을 전국 대학에 시달, 1984학년도 신학기부터 이들의 복직을 다른 교수 채용과 함께 같은 조건으로 허용토록 했다. 이로써 해직교수들은 4년 동안 충격과 갈등, 소외를 겪으며 인고의 나날을 보내던 끝에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자율적 조직능력 과소평가
이러한 유화정책의 결과,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제 공부나 열심히 하자’며 돌아선 학생들도 나오기 시작할 만큼 정권의 공세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대학들은 학생 선도위원회와 홍보위원회를 설치하여 학생 시위에 대처키로 했다. 학생선도위원회는 각종 학생시위 및 이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관련학생의 사법적 처리 사항을 심의하는 기구였으며, 홍보위원회는 학원사태 같은 학원문제를 정확히 홍보함으로써 대학 문제 해결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였다.
학교 당국은 시위 가담자를 분류해 경고장을 발송하기도 했고, 지도대상 학생을 선별해 구체적인 지도 방안을 마련하는 등 통일된 학생 징계처분의 양형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것이 전두환 정권의 뜻대로 돌아가진 않았다. 전두환 정권의 조치는 대학으로 복귀한 제적생이 전국적인 학생 조직을 결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하 운동조직은 민주 노조의 재건에 나서면서 노조 사이의 연대조직을 강화하게 돼, 전두환 정권이 시민사회의 자율적 조직능력을 과소 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 정권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학생, 노동단체,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재야단체들의 확산이 전개되었으며 그들이 제도권 야당과 제휴하면서 전 정권을 크게 위협하는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면서 정권세력과 반대세력 사이의 대결 구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선명하게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입력 : 2004.01.15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