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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교협과 민족문화작가회의 결성 
민주화를 열망한 교수들은 시국성명 발표 형식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6년 3월 1차 성명에 이어, 86년 6월 2차 성명, 87년 4월 3차 성명은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교수들은 성명 발표 효과의 한계를 인식하고 상시적인 공동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민주화 교수협의회

87년 5월, 제3차 성명 운동이 마무리되자 교수들은 조직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끝에 새로운 조직의 명칭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로 정했다. 6월 26일 창립총회 장소로 예정되었던 평창면옥이 봉쇄되었지만, 교수들은 경찰의 저지선 앞에서 약식 창립 선언을 하였다.

7월에 이르러 서명 교수들에 대해 시험답안지와 출석부를 제시하는 등 ‘반성문’을 쓰라는 5공의 탄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서명 교수들의 해외연구 여행도 가로막고, 연구비 지급을 거절하고 평가교수단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다양한 보복 조치도 가세했다.

5공이 그럴수록 민교협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민교협의 정식 창립총회는 7월21일 성균관대에서 이루어졌으며, 42개 대학 6백64명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88년 8월20일 대의원대회에선 간사 체제를 의장 체제로 바꿔 초대 의장에 김상기, 김진균, 송기숙 등이 선출되었다.

5공 시절 문인들의 민주화 투쟁은 85년 8월1일에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학인 401선언’, 87년 2월에 ‘자유실천 87 문학인 선언’ 등으로 나타났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 한동안 침체되어 있다가 무크지 활동, 그리고 젊은 문학인들과의 연계를 통해 활동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는 87년 9월17일에 조직을 확대 개편해 소설가 김정한을 회장으로 하는 ‘민족문화작가회의’로 거듭났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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