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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독재권력 허물어지다 
1987년 ‘조선대 5·6사태’는 박철웅 총장의 독선적인 학사운영에서 비롯된 사학 비리의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조선대는 전국 7만 2천여 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46년 설립된 대학이다. 당시 조선대학설립동지회장과 초대 학장을 맡았던 박철웅 씨는 50년대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이사장과 총장을 겸임하면서 대학을 개인 소유의 사유대학으로 변조시켰다는 게 당시 학생들과 교수들의 주장이었다.

조선대·인천대의 ‘몸살앓이’

신동아(87년 7월호)는 ‘조선대학에 있어서 박철웅의 존재는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전제가로 평해지고 있으며 독단에 맞설 경우 그는 학교 강단에서 축출되는 비애를 맛보아야 할 뿐이라고 한다. 그 결과 양심적인 교수, 유능한 학자들은 이 대학에서 쫓겨나거나 스스로 전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87년 5월 6일, 학내 민주화를 부르짖던 조선대생 시위대는 이를 제지하던 교수와 교직원들을 폭행하고 본관 학생처 사무실과 VTR실에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져 유리창과 집기를 파괴했으며 이 과정에서 교직원 27명이 중경상을 입고 다수의 학생이 부상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같은 해 8월 박 총장의 강치중 부속병원장 폭행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거부, 학사 운영이 이뤄지지 않았다. 박 총장은 문교부에 의해 총장직과 이사장직에서 해임당하면서 조선대 사태는 관선이사회 발족으로 일단락됐다.

설립자 백인엽 씨의 비민주적 학교운영과 비리로 81년부터 분규를 겪어오던 인천대는 86년 들어 비리사건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를 받고 풀려난 백씨의 재복귀 움직임과 관련 학생들의 반대 데모로 사태가 악화됐다. 81년 ‘국가헌납’ 파동과 86년 ‘대학 휴교조치’ 파동 등이 있은 후에도 문교부는 선인학원에 대한 근본적인 조치를 외면한 채, 파행과 불법이 자행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인천대 선인학원 산하 14개교의 운영은 94년 3월 시·공립화가 이뤄질 때까지 파행적으로 운영됐으며 학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 교수·학생들은 해직·제적·구속 등 고난을 감수해야 했다.

조선대 사태와 인천대 사태의 공통적인 원인은 학원의 사유화에서 비롯됐다. 모든 기구가 박철웅과 백인엽의 1인을 정점으로 꾸며졌고 학원은 온갖 비리와 교권 탄압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대학가 학원 민주화 요구 봇물

88년 대학가는 5공 비리 척결 요구와 함께 학원 민주화운동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 당시 크고 작은 분규를 겪지 않은 대학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학원민주화 운동이 봇물처럼 터진 시기였다.

2학기 접어들어 동국대·세종대·목원대 등 전국의 수많은 대학들이 학생들의 장기간 농성 등으로 학사 마비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대학의 민주화·자율화 요구는 사학의 경우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신입생 부정입학·교직원 무단 임용 등 재단의 각종 비리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학원민주화운동은 일부 대학에서 교수협의회와 직원노조의 호응을 얻는 등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 일부 대학에서는 재단퇴진 등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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