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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대학의 자화상 
학생들에 의해 학장과 학생처장 등 2명의 교수가 납치, 4시간동안 감금당하고 삭발까지 당한 사건이 발생해 교육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88년 11월 당시 목원대는 재단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전교생이 수업을 거부, 40여 일간 학사행정이 마비되는 등 분규를 겪었다.

학장 납치 폭행 삭발까지 … 사회 경악

11월 9일 대학교회 방화혐의로 폭행당해 대전 성모병원에 입원한 학생을 문병하고 나오는 김익원 학장대리와 신동수 학생처장을 10여명의 학생들이 대학 도서관 2층으로 납치, 두 교수의 뺨을 때려 김 학장대리에게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히고 삭발시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재단이 껄끄러워한 이군호 학장 퇴진 농성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F학점을 준 무역학과 남모 교수 등 2명의 교수를 학교측이 88년 4월 면직시켰다가 2학기 들어 이들에게 강의할 수 있도록 한데서 비롯됐다.

무역학과 학생들은 이같은 학교 당국의 결정에 반발, 9월 17일부터 수업 거부에 들어갔다. 10월 5일에는 이군호 학장이 사표를 제출했으며 10월 6일에는 교수협의회가 임시총회를 열고 학장 직선제와 남기철 재단이사장 및 모든 이사의 즉각 퇴진을 결의했다. 이어 10월 13일부터 전교생이 전면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남기철 이사장은 이사회가 이군호 학장의 사표를 유보시켰는데도 이를 수리하고 김익원 교수를 학장대리로 임명, 김 학장 대리를 배후조종해 전횡을 일삼았다는 것이 당시 교수·학생들의 주장이었다.

이 사건을 놓고 당시 언론과 대학교수들은 “서로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학생이 교수의 뺨을 때리고 머리까지 깎는 것은 통탄할 노릇”이라는 입장을 보인 반면 목원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은 삭발사건에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오랫동안 학교를 비운 채 호텔을 전전하던 김 학장대리를 학교로 데리고 온 것이며 삭발도 학생들이 학내사태의 책임을 지고 먼저 머리를 깎은 뒤 교수에게 요구하자 순순히 응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학내분규로 총·학장 수난

11월 11일 문교부는 이 사건과 관련 “교육적 차원이나 인륜 도덕적 차원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폭력행위”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학장과 학생처장을 감금해 놓고 머리를 깎은 이 사건은 우리 교육사상 부끄럽고 불행한 사건의 하나로 기록되었다.

6·29선언 이후 대학은 민주화·자율화 바람을 타고 각종 학내 분규를 겪는 가운데 총·학장들이 수난을 겪었다. 88년 1학기 56개 대학의 총·학장실, 사학재단 이사장실이 학생들에 의해 점거된데 이어 2학기 들어서도 30여개 사립대가 재단 비리 척결, 무능교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총·학장실을 점거해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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