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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삶에 대한 ‘자괴감’과 ‘빚짐’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철든 이후로는 그야말로 ‘허겁지겁’ 달려왔다고 생각된다. 80년대 우리 사회가 너무도 역동적으로 변화하여 왔기 때문에 역동적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삶 역시 역동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의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사회생활 속에서도 10분의 여유, 1시간의 여유, 1일의 여유를 가지면서 살 수는 없었던가 하는 반문을 요즘은 많이 해본다. ‘내가 이 길을 하루 이틀 갈 것도 아닌데’라고 여유를 가지려 애써본다.

나의 생의 큰 묶음을 나눈다면, 70년대 후반의 학생 시절, 80년대 비판학술연구자 시절, 90년대 이후 교수 시절로 나눌 수 있다. 나의 삶을 끌어온 하나의 힘을 든다면 아마도 동시대를 치열하게 산 친구들에 대한 자괴감과 ‘빚짐’이 아니었던가 싶다. 돌이켜 보면, 나는 부끄럽게도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사는 삶’의 모습으로부터는 한 발쯤 비켜 살아왔다. 그런 비껴 있는 삶에 대한 자괴감과 가장 치열하게 사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 한 켠에는 언제나 있었다. 학생시절 나는 당시의 시대와의 싸움 속에서 한발 뒤로 비켜있는 존재였다. 나도 학생운동에 몸담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종의 ‘2선’에 있었다. 80년대 강사로서 연구자로서 비판학술운동을 하고 있었을 때에도 한편에서는 감옥을 ‘밥먹듯이’ 하며 시대를 가장 선두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친구들이 있었다. 90년대인 내가 교수가 되어 그래도 사회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70년대, 80년대를 헌신했던 어떤 친구들은 이제는 달라진 지형 속에서 생활고로 고통받으며 운동적 삶을 꾸려가고 있다.

나는 80년대 내내 강사로 전전하였다. 대표적인 비판지식인으로 ‘낙인’찍혀 있던 상황에서 몇 차례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자리를 잡지는 못하였다. 대학의 인사라는 것은 참 묘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 너무도 쉽게 잘 되는 사람도 있고, 잘 될 것 같은데 그렇게 그렇게 일이 꼬여서 교수직을 갖지 못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운이라는 것도 있나보다’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몇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교수로 가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꼭 막힘을 당하곤 하였다. 마침내 70년대 기독교 인권운동을 하였던 성공회대학의 이재정 총장을 만나게 되어 이제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성공회대학에서 보내고 있다.

21세기 초를 사는 우리는, 80년대와는 전혀 다른 현실 앞에 서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급진적 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에 대하여 이전과는 다른 인식지평 위에서, 또한 80년대의 ‘교과서적 마르크스주의’를 넘어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와 남한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변화 및 자본주의와 국민국가의 세계화 까지를 고려하는 보다 폭넓은 인식지평 위에서, 과거의 개념, 쟁점, 이론체계를 재검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논쟁을 다시 시작하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80년대의 혁명적 열정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자신을 사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내던지는 탈아(脫我)의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최고의 교육적 ‘기득권집단’일 수 있는 세칭 ‘일류대생’, 나아가 전국의 학생들, 나아가 선진노동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자의 처지로 돌아가고자 정도의 탈(脫)계급적 열정과 자기헌신이 있었다. 80년대의 치열했던 논쟁의 근저에는 바로 이러한 이타(利他)적 에토스가 있었다. 나는 80년대의 그러한 급진적 정신과 이타적 에토스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때로 나는 연구실에 조용히 앉아 차분히 연구에 열중하고 싶은 충동과 열망을 갖는다. 그러나 나는 역동적인 한국사회가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의 삶을 바쁘게 만들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한국사회와 같이 역동적이고 압축적인 현실을 사회과학적 소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하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압축적인 발전의 경험과 더구나 그것의 위기의 경험은 서구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세계사적 비밀들을 캐는 보고일 수 있다. 어떤 점에서 보석으로 다듬어질 수 있는 광물이 널려 있는 놀라운 현실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이 역동적인 현실이 제공하는 풍부한 사회과학적 소재를 다듬을 프리즘을 갖기만 한다면, 이 불행한 현실은 곧 놀라운 행복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사회란 언제나 시대의 아픔을 대결하면서 가장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전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바로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의 고통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나 자신부터 그것을 망각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스스로 반문하면서, 나는 내 스스로의 나태함을 오늘도 채찍질한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입력 : 200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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