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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낡은 틀 깨고 새로운 도약위한 몸부림 
1990년대는 끝나지 않는 독재와 이로 인한 시대와의 불화를 이기지 못하고 꽃같은 청춘들이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르고, 건물 밑으로 제 몸을 던지면서 시작됐다. 대학은 그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전 현대사 속의 대학생들이 학문연마와 연찬에 매진하기보다 사회 현실의 비리와 모순을 지적하고 그 개선을 요구하는 비판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듯이 그들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그러했다.

격랑치는 현대사와 젊은 지성

격랑치는 현대사 속에 젊은 지성들은 움직이는 촉수였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민초들의 가장 앞에서 가슴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울면서 세상을 움직였다. 하지만 불과 2~3년이 더 지나서 이 싸움은 아련한 노스탤지어가 됐다.

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잔존한 독재세력과의 타협을 통해서나마 92년 문민출신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하면서부터다. 소련과 동구의 몰락 이후였다. 거대한 파고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 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탈 이념’과 ‘탈 근대’라는 국적 불명의 사조로 지식계는 조울병을 앓는 듯 했다. 인문학은 아무런 사회적 좌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교양주의자들의 소비 품목으로만 제 명맥을 다했다.

이런 와중에 이른바 ‘IMF 환란’으로 불리는 경제 위기가 몰아치고, 휘청이던 경제에 겨우 균형을 잡아나갈 때 쯤 돼서는 중국시장이 아시아 경제의 블랙홀이 되어 모든 산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경제적 탈출구가 막힌 한국은 차별화된 테크놀러지를 개발하는 것 외엔 도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를 위한 인재개발에는 막대한 교육재원의 추가 투여가 불가피했으나 그럴 여력은 없었다. 정부는 이를 구성원간 경쟁을 통해서 해결하려 했던 것일까. 이후 제시되는 ‘교육대계’ 마다 연대와 협동보다는 경쟁을 통한 효율화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멈추지 않는다. 이로부터 대학들간 경쟁, 대학 내 교수들간 경쟁, 취업시장의 청년 구직자간의 경쟁이 가속화됐다.

대학의 무한 경쟁시대

그리고 시나브로 자본의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든 대학은 확실히 국가 경쟁력의 전초기지가 되어가고 있다. 공동체에 복무하는 지식 생산의 도장이기를 멈춘 대학의 학생들도 생존 경쟁을 위한 아귀다툼의 나락으로 내몰리면서 비판을 통한 현실의 개선자가 되기보다 그 추종자가 되어 가는 길을 선택한다. 신산한 젊음을 위무받기 위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미덕은 소비자본주의에 투항하는 길뿐이었을지 모른다. 가히 90년대적 징후이다.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듯,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일까.

안온함에 사로잡혀 권위주의적 대학운영으로 일관하던 대학에 변화의 물꼬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세계 대학들과 진검 승부를 펼쳐야 하는 대학들에게 더 이상 등록금만으로 ‘회계를 맞추는’ 주먹구구식 대학 운영이 용납되지 않았다. 대학마다 발전을 위한 체질개선을 시도했고, 발전기금을 위해 사업을 벌이고 기부금을 모집하러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대학을 사유화하려는 사학재단은 점차 더 많은 견제를 받게 됐다.

개방화와 인터넷

교수들도 더 이상 지식 연마를 게을리 할 수 없게 됐고 자신이 학생을 평가하듯 학생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학생들은 전통적인 이념이나 집단에 대한 경도에서 탈피하면서, 개방성을 토대로 세계를 바라보는 자기만의 안목과 통찰력을 획득했다. 이들은 언제나 가족, 학교, 회사라는 조직의 일원이었을 뿐이던 기성세대와 달리 ‘자아’를 더욱 고민하는 감수성을 지닌 세대였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와 만나고, 학위 없이도 전문가 뺨치는 세계 인식을 갖추기도 했다. 새로운 지식인상의 탄생이 가능해진 것이다.

학계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도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대중의 무지라는 조건 위에서 자행되던 일부 교수들의 곡학아세와 지식 폭력은 사이버상에 모든 것이 공표되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대중의 감시체제 아래 놓이기 시작했다. 지식인의 ‘언행일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론장이 형성됨으로써 위선과 기만의 문화가 판치던 지식계에 일대 변화를 몰고올 조짐이다.

하지만 대학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낡은 껍데기를 벗고 간판의 거품을 뺀 채 전통의 이름을 내려놓고 이제부터 그들은 자신들과 싸워야 할 때라는 각성이 그 출발일는지 모르겠다. 
입력 : 200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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