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10월29일 오전 검찰은 소설 ‘즐거운 사라’의 작가인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를 기소했다. 검찰이 마 교수에게 적용한 법률은 형법 244조 ‘음란물 제조’ 혐의였다.
검찰은 “이문열, 염재만, 이태동, 구중서 등 동료 문학인들이 마 교수의 작품과 관련해 발표한 평가 내용을 종합해 보면 문학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 보기 어렵고 동성애, 그룹섹스, 오럴섹스, 자위행위, 대학교수와 제자와의 변태적 성행위 등이 문학적 승화없이 혐오감을 일으키고 있으며, 작품 상황 설정의 패륜성과 함께 여성을 동물적으로 상품화하고 있다”며 형법상 음란죄로 규정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음을 강조했다.
문학인가? 외설인가?
마 교수는 이에 대해 “자신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식욕과 성욕으로 나눈 프로이트의 이론을 원용, 문학 이론화하는데 노력해 왔으며, 우리 사회가 식욕에 탐닉하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성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대이므로, 성 문제를 은폐하기보다는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공론화하기 위해 자신의 문학 이론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리얼하게 소설화했다”고 주장했다.
문단은 공식적으로 검찰의 마 교수 기소에 반발했다. 마교수의 구속 이틀 뒤 발표된 ‘문학작품 표현자유 침해와 출판탄압에 대한 문학·출판인 공동성명서’에는 문인 2백여명이 서명해 “문학의 문제는 문단의 내부에서 결정되어야 하며, 또 최종적으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 시간을 거치며 검증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 장르에서 표현의 자유가 타율적인 규제나 공권력에 의해 그 예술성을 박탈당해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여론재판’을 이끌면서 ‘성적으로 문란한 도덕 파탄자’로 마교수를 내몰았고 심지어 동료교수와 진보주의적 성향의 일부 인사들까지 그에 대한 비난에 가세했다. 그의 유일한 원군은 연세대 학생들. 연세대생들은 마교수 강단 복귀 운동을 벌였고 국문과 학생회는 6백70쪽에 달하는 사건백서 ‘마광수는 옳다’까지 정식 출간하면서 마교수 구명에 앞장섰다. 재판이 진행되던 와중에 이 사건을 진두 지휘한 전 서울지검장 이건개 씨가 수뢰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일본 아사히 텔레비전 출판국이 문제의 소설을 출판하겠다고 나서면서 재판의 향방은 예측할 수 없게 전개됐다.
유죄판결과 해직
재판은 여러 고비와 우여곡절을 넘기면서 ‘성 모럴’과 ‘문학적 표현의 한계’를 놓고 사회적 논란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 결과는 마교수의 완패. 마교수는 구속된 지 두달 만에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94년 7월 기각됐다. 대법원에 다시 상고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마교수는 상고기각 후 직위해제 상태로 재직중이던 연세대에서 해직됐다.
그러나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왜 검찰이 돌연 대학교수의 문학작품에 대해 법의 잣대를 들이대 유례없는 전격 구속을 감행했는지, 그 정치적 배경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구속 당시 마교수는 연세대에서 1천여 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다섯 개의 강의를 하고 있었다. 현직 대학 교수가 학기중에 음란죄로 기소된 것도 미증유의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곧 벌금형이 아닌 실형이 선고된 것도 이례적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검찰이 좀 심했지만 마광수 소설이 음란물인 것도 사실”이라는 식의 양비론으로 이 사건을 바라봤다.
그러나 당시 ‘마 교수 강단복귀를 위한 대책위원회’의 한 학생은 ‘마교수 필화사건’을 ‘판독하기 어려운 시국사건’으로 정의하면서 “이 사건은 고발 없이 검사 단독으로 이뤄진 이른바 인지 사건”이라며 “사회악 토벌 같은 기획 수사의 전형적인 수법이 동원된 마 교수 사건은 6공의 정치적 희생물”이라고 주장했다.
마 교수는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98년 3월13일 사면, 복권됐고, 같은해 5월 1일자로 복직됐다. 그렇지만 ‘즐거운 사라’는 아직도 해금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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