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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판도라의 상자 
1990년대 초반 대학가를 가장 뜨겁게 달군 화제는 무엇보다 입시부정 사건이었다. 6공의 가장 큰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 입시부정 사건은 비단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어서 84년부터 91년까지만도 20건 이상의 부정입학 사례가 드러났다. 특히 89년 동국대에서 총장과 이사장이 컴퓨터를 이용한 성적 조작으로 46명을 부정입학시킨 사실과 90년 한성대 재단이사 등이 1인당 3천만~4천만원씩을 받고 94명을 부정입학시킨 사건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중 91년 건국대 입시부정 사건은 이례적으로 구체적 내용들이 세세히 공개되면서 세간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잇따른 입시부정 사건

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91년 5월23일부터 6월1일까지 교육부가 실시한 정기 행정감사를 통해서였다. 교육부는 감사에서 90년과 91학년도 입시 때 일부 학생이 부정입학한 사실을 밝혀냈으나 공표하지 않고 당시 총장이었던 김용한 교수와 관련자 2명을 중징계토록 했다. 당시 언론사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입시 부정 제보가 잇따랐는데 교육부의 공식적 답변은 “정기감사에서 부정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잡음이 일고 있는 것은 김용한 전 총장과 안용교 현 총장 추종세력이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였다.

교육부가 건대 부정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은 6월26일 한 방송사 보도에서 건대 부정의혹과 함께 부정입학자 중 한 명으로 확인된 이 대학 성용승 군이 경희대생인 박성희 양과 함께 전대협 대표로 베를린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인 6월28일부터 7월9일까지 건국대에 대한 2차감사를 실시하고 나서였다. 교육부는 당시 청와대에 보고만 하고 발표를 미루고 있다가 감사가 끝난 지 10여일이 지난 뒤인 7월25일에야 건국대가 지난 89년부터 91년까지 3년 동안 49명을 부정입학시켰다고 발표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은 교육부의 2차 감사가 끝난 뒤부터였는데 7월31일에는 검찰과 각 언론사 팩시밀리에 88년도에도 건대가 53명을 부정입학시켰다는 제보가 날아들었다. 이 대학 축산대 모교수의 이름을 ‘도용한’ 이 익명의 제보자는 유승윤 당시 재단이사장 등이 학생들을 부정 입학시키면서 수십억원을 착복했다고 밝히는 한편 성모 군 등 53명의 부정입학자 명단을 공개했다. 검찰은 교육부의 감사 결과와 이 제보 내용을 토대로 기부금 착복 여부에 대해서 집중 수사를 폈다.

학내 문제발단으로 불거져

건대의 입시부정 사실은 학내 파벌간의 세력다툼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파벌싸움 때문이든 아니든간에 학내 문제가 발단이 돼 폭로된 것은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사건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도 일었다. 교육부의 석연치 않은 태도 때문이었다. 교육부는 당시 2차 감사에 착수하기 이전인 6월28일까지는 건국대의 부정사실을 어떻게든 덮어주려고 했던 것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교육부는 건대 내부에서 입시부정 의혹이 제기된 뒤 3개월여가 지난 후에야 1차 감사를 실시했으며 감사에서 부정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표를 미뤘었다. 그러던 것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후 상황이 급진전돼 재단이사장 등 6명이 구속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91년 건국대 총학생회장 강모 군은 “건대사건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강군은 “건대사건을 덮어주려고 했던 정부는 전대협 대표인 성군과 박양이 베를린에 도착한 때인 6월28일 그동안의 태도를 갑자기 바꾸었다. 이 사건을 전대협과 전대협이 중심이 돼 펼치고 있는 통일운동의 이미지를 흐려놓기 위해 이용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스로 가려줘왔던 비밀을 새삼스럽게 들춰내 야단법석을 떨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비리를 일삼아온 재단을 두둔하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건대 부정사건을 수사한 검찰과 교육부는 이를 부인했다.

92년은 건국대 외에도 성균관대, 고신대 입시부정사건으로 얼룩졌으며, 서울대 음대·이화여대·건국대·부산여대·동아대 등 5개 대학에서도 채점비리사건이 터져 사학재단과 교수사회의 윤리성 문제로 홍역을 치른 한 해였다. 하지만 해를 거른 93년에도 입시부정 사건이 잇따라 국민들에게 충격과 허탈감을 안겨줬다.


■ 구멍 드러난 국가관리 입시제도

92년 1월21일은 국내 대학입시 23년 사상 초유의 불상사가 벌어진 날이었다. 대학에 보관중이던 입시 문제지가 시험 전날 도난당해 대입시험이 연기된 것이다.

교육부는 21일 서울신학대학(경기도 부천소재)에 보관중이던 후기대 학력고사 문제지가 도난돼 다음날로 예정됐던 후기대 입시일을 2월10일로 연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이날 아침 7시40분께 서울신학대학 교무과에 도둑이 들어 시험지 뭉치 4개 가운데 각 뭉치에서 한 장씩의 시험지를 도난 당했다고 한다. 문제지 도난 사실을 처음 발견한 이 대학 당직 근무자 정모씨는 “이날 아침 학교를 순찰하던 중 본관 1층 전산실에 보관중이던 문제지 상자가 파손돼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후기대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나 국가관리 아래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대입학력고사가 ‘시험 하루 전 연기’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후기대를 포함한 전문대 입시 연기, 재정적 손실 등 우리사회에 엄청난 파문과 피해를 남겼다. 27만 명에 이르는 후기대 수험생들은 갑작스런 시험 연기로 큰 혼란을 겪어야 했고, 시험문제 재출제·재인쇄에 따르는 비용만도 3백억원에 달했다. 이러한 사회적 파장에 책임을 지고 교육부장관은 해임됐고 대입시험 관리책임자들 다수가 문책을 받았다. 이 사건은 사건 발생 직후 대규모 수사반이 꾸려져 국민들의 큰 관심 속에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결국 범인을 밝히지 못하고 미해결 사건으로 남았다.

‘후기대 대학입시 연기’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맞았던 대입 시험지 도난 사건은 그 뒤 국가 관리 아래 획일적으로 치러지는 대학입시의 문제점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 전후로 잇따라 터진 예능계 실기시험 비리, 광운대 입시부정, 대학 시험지 유출사건 등은 대학입시제도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병리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가를 낱낱이 드러내 보였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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