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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민주화, 뒤로는 인권 탄압 
1991년 4월 15일 연세대 총학생회 사무실엔 초췌한 얼굴, 허름한 복장, 비장한 표정의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입영 3개월 만에 군 부대를 탈영한 최홍기 이병. 사무실을 덮었던 고요함은 그가 말문을 열자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바로 민주화를 선언한 노태우 정권이 운동권 학생 죽이기를 위해 녹화사업을 일삼았음을 폭로한 것.

‘녹화사업’의 진실

“저는 이른바 운동권 학생으로 낙인찍혀 합법을 빙자한 6공식 강제징집으로 조기 입대한 뒤 신병 훈련 후 보안대로 옮겨져 2박 3일 간의 조사 끝에 육군 2군수 지원사령부 5163부대 805 독립중대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놀랍게도 5공 시절에나 있는 줄 알았던 ‘녹화사업’부대였습니다.”

이날 최 이병의 폭로로 다시 세간에 드러난 녹화사업은 “빨간 물을 빼고 푸른 물을 들이는 순화작업”이란 의미로 본래 전두환 정권이 학생운동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81년에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81년 11월부터 병역법 절차를 철저히 무시한 채,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로 군에 입영시켜 보안사를 중심으로 녹화사업을 단행해 정권에 순응하도록 학생들에게 의식 교육을 시켰으며 또한 휴가형식으로 나가게 되면 다른 운동권 학생들을 고발해야 하는 프락치 공작도 강요했다. 하지만 이 녹화사업과 학원프락치 공작은 잇따른 사망자 발생으로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혀 담당부서인 보안사 3처 5과가 해체돼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그런데 이 녹화사업이 소위 6·29 선언으로 민주화의 문을 열었다는 노태우 정권에서 비밀리에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무더기 강제 징집

노태우 정권은 대학 내 학생회 등 공개단체에서 활동한 학생과 시위전력자 가운데 휴학이나 졸업예정자, 2년 미만의 실형을 선고받은 시국관련 출소자, ROTC나 RNTC(초등교사 하사관 후보생) 출신 제적자 등을 대상으로 녹화사업을 일삼았다. 대상자들은 신병훈련을 마치고 보안대로 끌려가 90년 녹화사업에 대해 양심 선언했던 윤석양 이병처럼 다른 운동권 학생이나 시국사범들을 고발하는 프락치 요구를 받아들이면 보안사 정보처에서 근무하게 되고 이를 거부하면 최 이병처럼 녹화사업 부대에 배치돼 온갖 고초와 구타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녹화사업은 합법을 가장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지탄을 받았다. 노태우 정권은 87년 6월 항쟁으로 인한 민주화 열기에 밀려 ‘집시법 위반자의 경우 실형 3년 이하는 징집’하던 시행령을 88년 8월 1일 ‘실형 1년 또는 집행유예 2년 미만을 선고받은 자만을 징집’하는 것으로 개정했으나 불과 7개월 후인 89년 3월 25일 공안정국을 틈타 ‘실형 2년 미만을 선고받은 자는 모두 징집’하는 것으로 재개정해버렸다. 실제로 89년 3월 민정당사 점거농성 사건 관련자 23명 가운데 20명이 2년 미만의 형을 선고받아 징집대상이 되었고 동의대 사건 관련 학생 가운데 90년 집행유예로 풀려난 23명 중 22명이 무더기로 강제 조기징집돼 녹화사업에 의한 교육을 받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지 얼마 후인 91년 5월 8일 “88년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화를 추진해왔으며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것 없이 일해 왔다”고 말했으니 그가 말한 민주화란 대체 어떤 것일까?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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