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폭행한 패륜인가, 주구 응징한 정의인가?
학생운동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 폭력이 수반된 학생운동이라면 그것이 비록 ‘정의’를 표방했다 할지라도 과연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 것인가?
1991년 6월 3일에 있었던 외대생 정원식 전 총리 계란 투척 및 폭행 사건은 당시 표현을 빌리자면 ‘있어서는 안 될’, ‘인륜이 무너진’ 바로 그런 사건이었다. 강단에 섰던 스승이자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학생들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자 사람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총리에게 계란 투척
당시 사건은 정원식 교수가 신임 총리로 취임하면서 한국외대 교육대학원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던 중 일어났다. 당시 총학생회장 정원택 군 등 학생회 간부 10명을 포함한 3백여명의 학생들은 대학원 건물로 몰려가 “노태우 정권의 앞잡이 정원식은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치며 정 총리를 학교 밖으로 끌어낼 태세를 갖췄다. 이에 정 총리는 경호원들과 함께 건물을 빠져 나가려 했지만 비상구문을 잠그고 대기하던 학생들과 충돌, 40여개의 계란 세례는 물론 구타까지 당했으며 교문까지 1백50여m를 끌려 간 후 간신히 풀려나 택시를 타고 총리 공관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이 뉴스를 통해 보도된 후 학생들에 대한 엄청난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다. 각계 사회 인사들은 “학생들의 주장이 무엇이든지간에 인륜을 짓밟는 행동은 용서할 수 없다”고 성토했으며 윤형섭 교육부 장관은 “일부 학생들의 폭력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정부는 학원폭력사태에 대해 공권력을 총동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전국 총·학장들은 학내 폭력에 엄정 대처할 것을 결의했으며 결국 학생들은 스승을 폭행한 패륜아로 전락, 형사 처벌을 받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등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된다.
정권에 대한 반감
하지만 이 사건을 학생들의 비인륜적인 폭력사태로만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정 전 총리는 88년 12월 5일부터 90년 12월 27일까지 문교부 장관을 지내면서 89년 전교조문제에서 90년 세종대 분규까지 어느 하나 진통 없이 넘어간 것이 없을 정도로 혼란한 정국을 만들었고 특히 89년 3월 서울교대 분규와 5·3 동의대 사건, 90년 세종대 분규 때는 경찰의 초 강경진압을 지시, 엄청난 불상사를 일으켜 당시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 따라서 학생들의 행동은 이러한 정 전 총리를 응징했다는 동정 여론도 상당했다.
실제로 이에 대해 당시 범국민대책회의는 “정씨 봉변사태는 개인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지탄 받는 인물인 정원식을 총리로 임명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라고 주장했으며 전교조는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현 정권이 국민의 요구를 외면한 채 89년 공안정국을 주도하면서 1천5백여명 교사를 무자비하게 교단에서 쫓아냈고 세종대, 동의대 등 학원사태를 악화시킨 장본인인 정씨를 총리로 임명한데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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