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낯설게만 들리는 성희롱이 최초로 법적 심판을 받은 것은 1994년 4월18일 이었다. 일명 서울대 여조교 성희롱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서울대 자연대 전 조교 우모씨가 “성희롱을 당했다”며 서울대 신모 교수와 이 대학 총장 및 국가를 상대로 5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서울대 여조교 성희롱 사건
법원의 심판을 받기 전부터 이 사건은 우씨의 성희롱 사건 폭로로 이미 서울대 내에서 격렬한 대자보 논쟁을 거쳤다.
우씨는 “담당교수가 조교 재임용을 미끼로 성희롱을 일삼았다”, “직위를 이용해 은밀한 접근을 계속했다”, “2명의 전임 조교도 같은 성희롱을 당했다”고 대자보를 통해 폭로했다.
이에 대해 신교수는 “우씨의 평소 근무태도가 성실치 못해 재임용에서 제외됐을 뿐”이라며 “우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반박문을 게재했다.
논란이 가열되면서 급기야 신교수는 “우씨가 재임용에 탈락된 것에 앙심을 품고 치졸한 복수극을 연출하고 있다”며 93년 9월 우씨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전격 고소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와 서울대 대책위가 ‘신교수 성희롱사건 공동대책위’를 구성하면서 ‘성희롱’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비화된 것.
재판과정에서 우씨는 “신교수가 조교 업무를 보고 있으면 실험실 기기 작동법을 가르쳐준다며 뒤에서 포옹하듯이 안거나 손이나 등을 쓰다듬기가 예사였다”고 주장했다. 또 관악산에 같이 산책을 가자면서 “옷차림이 불편하면 옷을 내 방에서 갈아입어도 된다”며 제안해와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우씨는 신교수를 피하기만 하다가 성적 접촉과 제안에 단호한 거부 의사를 밝힌 후 8개월이 지나서 돌연 재임용에서 탈락됐다며 ‘보복 해임’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신교수측 변호인은 ‘재임용 탈락에 대한 복수극’이라는 당초의 주장을 꺾지 않고 우씨의 ‘진실성’에 대한 재고를 재판부에 요청했다.
처음부터 이 사건이 시중여론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재판을 두고 “이미 관용돼온 일들인데 특별한 판정 결과가 있겠느냐”는 추측을 내놨다.
‘성희롱’ 재판결과 공방
하지만 예상과 달리 1심 재판부가 “교수의 성희롱이 인정되므로 조교에게 3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부터 ‘성희롱’의 정의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불붙기 시작했다. 여성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재판부의 개혁 의지가 가시화된 첫 판결”로 높이 평가했지만 뿌리깊은 사회 통념 탓인지 일각에서는 이 판결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많은 남성들은 ‘별 것도 아닌’ 일에 3천만원이라는 거금의 손해 배상액이 결정된 재판 결과를 납득하지 못했고 ‘돈 없으면 동료 여직원은 멀리 하는게 좋다’는 비아냥도 만연했다. 또 서울대 교수사회에서도 우씨의 상처에 대한 공감보다 신교수에 대한 동정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여론재판의 영향 때문일까. 2심 재판부는 “성희롱으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고 농담 정도가 경미하며 작업장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원심을 뒤집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98년 2월10일 1심 재판이후 4년여만에 신교수의 개인차원 배상을 결정함으로써 사건은 우씨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이 사건은 교수의 위계에 의한 제자 성희롱을 사회적 문제로 처음 제기했을 뿐 아니라 직장에서 상사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돼오던 여직원에 대한 성희롱을 ‘여성인권에 대한 침해이자 처벌이 뒤따르는 범죄’로 법원이 규정하였고, 따라서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이 가해자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인 기준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로 평가됐다. 그러나 개인배상에 대한 판결과는 별개로 성희롱을 방조한 기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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