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초 무렵부터 신촌을 중심으로 서서히 세를 형성하기 시작한 록 카페 문화는 90년대 초반의 새로운 문화징후로 떠올랐다. 록 카페는 술을 마시며 시끄러운 음악에 취하기도 하고 흥이 오르면 아무한테나 몸을 부비며 흔들어댈 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고고장’이었다.
‘록 카페’ 열기
비싼 돈 주고 나이트 갈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곳, 3~4명이 한바탕 열광의 밤을 연출하는데 드는 비용이 고작 2만~3만원에 불과한 곳으로 통하게 된 록 카페는 젊은이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대학로로 강남으로 상권을 키워갔다.
원래 록 카페는 대중음악의 한 갈래인 로큰롤(Rock & Roll)만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카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전에는 록에 심취한 사람이 록 카페를 차리면 역시 같은 음악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몰려들던 음악동호인 그룹만의 향유 문화였다. 이런 식으로 신촌에 5~6군데 생기던 록 카페는 처음에는 젊은이들의 주목을 끌지 못해 영세했다. 그러던 록 카페가 본격적인 인기를 끌게 된 시작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가요나 댄스뮤직을 삽입하면서부터. 따라서 본래 의미의 록 카페는 퇴색되고 ‘변종’이 된 셈이다.
당시 이런 록 카페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됐는데 첫 번째가 록 음악만 고집하는 원형적 모습이었다. 손님들은 음악 자체에 매료돼 어떤 카페에 가면 누구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곳을 찾았다. 둘째는 대형 스크린을 구비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곳으로 사람들은 ‘보기 위해’ 여기에 들렀다. 셋째, 댄스뮤직 장르를 테마로 술기운이 오르면 춤을 출 수 있도록 한 곳이었다.
‘불온’한 유흥문화 비판
바로 세 번째 유형이 이후 확산 일로를 걸은 록 카페의 형태로, 신촌과 대학로에서 세를 키운 록 카페는 곧 고대앞과 신림동, 인천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한 록 카페의 주인은 이를 심야영업 금지의 영향으로 분석하며 “그전에는 1차는 소주, 2차 맥주, 3차는 나이트 하는 식으로 술을 마셨는데 지금은 짧은 시간에 ‘화끈하게’ 놀자는 생각인 것 같다”고 록 카페 열풍을 설명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민주화열기에 찬 물을 끼얹는 록 카페의 확산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갑작스레 등장한 국적없는 돌연변이 문화가 민족·민중 문화를 갉아먹고 있다는 판단과 함께 공동체 지향적이기보다 개인주의적 욕구의 배출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보수적 논조를 펴던 언론이나 기성세대의 눈에도 마땅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매스컴들은 앞 다투어 잠입르포 등 형식의 취재를 통해 대학생의 이 ‘불온’한 유흥문화를 꼬집고 뒤틀었다. 또 우리 사회의 구멍난 법과 재빠른 상술, 젊은이들의 무절제한 향락화 등 상업주의적 퇴행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으로 록 카페를 지목해 비판했다.
그러나 록 카페를 즐기던 당시 신세대들은 나름의 논리로 항변했다. 그들은 “놀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록 카페를 찾는데, ‘즐기는 게 뭐 나쁘냐’”며 반박했다. 실제로 일부 문화비평 그룹은 개방적 의식구조를 가진 신세대들이 쾌락을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향유하기 시작한 하나의 긍정적 징후로서 이해하기도 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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