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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총장들 ‘돈찾아 삼만리’ 
1990년대 초반 사립대 총장들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경영형’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대학발전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찾아 삼만리’를 할 뚝심과 인맥, 공격적 경영능력을 갖춘 이들이 대학의 수장으로 각광받게 됐다는 뜻이다.

‘경영형’ 총장 각광

이런 ‘경영자 총장’에 딱 들어맞는 행보를 보여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인물은 연세대 송자 총장. 그는 대학 총장 직무보다 연세발전위원회 위원장 직무로 항상 더 바빴다. 선배 총장들이 나서기 꺼리던 자리에도 그는 ‘발전기금’을 끌어모을 수만 있다면 서슴지 않고 나섰다. 실제로 송 총장은 많은 돈을 모아왔다. 의과대학 한 교수가 소개해준 인물로부터 1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받기로 직접 확약 받아온 일화는 그의 모금활동이 얼마나 정력적이었는지 보여줬다. 93년께 재단이사진 개편때는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을 재단이사로 영입, 기업 기부금 확보의 초석을 마련했다. 송 총장의 판단은 맞아 떨어져 김 회장은 막대한 재원을 연세대에 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송 총장은 푼돈을 지속적으로 모아들이려는 전략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동문 조직을 통한 10년간의 모금운동 추진과 함께 전국 4백여개 교회를 ‘연세대를 돕는 교회’로 연결해 교인들의 헌금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서강대 박홍 총장 역시 기업인을 상대로 열심히 뛰었다. 당시 서강대 한 관계자는 “박 총장은 누가 돈을 줄 것 같으면 한밤중에라도 쳐들어가 땅바닥에 몸이 붙을 정도로 겸손하게 사정한다”고 말했다. 예수회 신부인 성직자 총장이 읍소하듯 모금에 나서는데 재력가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지 않을까. 박 총장 재직 당시 서강대에서는 45억원 규모의 청년회관뿐 아니라, 대학원 건물, 공대 건물 등이 잇따라 건립 또는 신축에 들어갔다고 한다.

기부금 모금 발벗고 나서

90년 이화여대 직선1호로 추대된 윤후정 총장도 ‘21세기를 위한 대학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서대문 옛 국제대학 건물을 수익성 높은 빌딩임대사업으로 전환시키고, 의과대학 부설 목동병원을 비롯, 약학대, 사범대, 미술대를 증축할 계획을 수립·추진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한신대 주재용 총장은 기부금 모금을 위한 ‘대학발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모금 1차 대상으로 학교당국과 직원대표, 대학동문들을 참여시켰다. 또 재단인 기독교장로회를 통해 교회 관계자 등 외부 인사의 참여를 확대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외부 기금모금뿐 아니라 가혹한 재정 긴축도 시작했다. 교육과 상관없는 부대비용은 철저히 통제하고, 보직교수 판공비나 교수 회식비를 줄였으며 사무용품 절약운동도 펼쳤다. 이 덕분에 한신대는 대형 대학이 아니면서도 예산 절감만으로 매년 1억원 정도를 적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나친 경쟁논리 우려

90년대 초반 바야흐로 대학총장은 ‘지성인의 표상’이나 ‘교육행정의 조정자(co-ordinator)’라는 꼬리표를 떼고 ‘경영 자질’과 ‘모금 능력’으로 그 실력이 가늠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재단의 ‘쥐꼬리’ 전입금과 국가의 지원 부족이라는 만성적 문제점의 해소가 없는 상황에서 총장들의 이런 분투는 대학의 운영을 효율성이나 경쟁력 논리에 지나치게 치우치도록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아울러 총장들의 모금 노력은 결과적 평등을 보장하지 않았다. 기부금이 서울지역의 일부 명문대로만 흘러들어가는 기부금 독식 현상은 대학간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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