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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 파문 
서강대 총장이던 박홍 신부(현 학교법인 서강대학교 이사장)는 1994년 7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과 전국 14개 대학 총장들과의 오찬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북한이 학생운동 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게 발언의 요지. 박 총장은“학생운동권 배후에는 사노맹이, 그 뒤에는 사노청이, 또 그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 그들은 북한 ‘로동신문’이나 팩시밀리를 통해 지령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에 암약하고 있는 친북좌경세력에 의해 더 이상 학생들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사파의 실체를 폭로했다”며 지식인으로서‘비장’한 결심에 의한 행동임을 강조했다.

학생운동 북한이 조종

김일성의 사망 직후 안보 불안 분위기가 일고 때마침 김일성 조문논쟁이 일었던 때인 만큼 여론은 곧바로 반응했다. 특히 가톨릭 사제이자 지성의 전당인 대학의 총장이 한 발언이었던 만큼 일반인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주요언론과 방송사들도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그의 충격 발언은 여기서 멈춘게 아니었다. 박 총장은 곧이어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북한에 초청돼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한국에 돌아와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말해 대학가를 또 흔들어 놨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다음부터였다. 명백한 증거를 갖고 있다던 박 총장이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증거라고는 3년 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수도 타슈겐트에서 북한 사람들이 남한 한총련 사무실에 팩시밀리를 보내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는 것과 94년 6월 옌볜의 한 세미나에서 만난 김일성 대학의 한 교수로부터 들었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북한과 팩시밀리를 교신한다고 해서 그것을 그들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증거라고 보는 건 지나친 비약이며 반공주의자가 김일성 대학 교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 것도 신빙성을 떨어뜨린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다

게다가 그의 주장은 당시 운동권에 대한 일반적 상식과도 부합되지 않았다. 즉 한총련과 사노맹은 소위 말하는 ‘NL’파와 ‘ND’파로 노선이 전혀 다른 세력이었다. 게다가 사노맹은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표방하기는 했지만 북한식 사회주의를 비판하던 조직이었다. 그런 사노맹의 배후에 북한의 사로청이 있다고 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운동권의 반응이었다. 이름이 비슷하다는데서 착안한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져갔다. 박 총장은 학생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도 있다고 했지만, 그 학생들을 밝히면 “그들이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며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 총장의 주사파 발언은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그가 추가로 입에 담은 ‘북한 장학금’ 발언으로 인해 경상대 교재인 ‘한국사회의 이해’ 집필자들은 검찰 수사와 법정 투쟁을 감수해야 하는 수난을 당했다.

특히 박 총장은 95년 당시 파업중이던 한국통신 노조를 근거없이 주사파로 몬 결과 대법원으로부터 ‘한통 노조에 2천5백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판결을 선고받는 쓰라림도 겪어야 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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