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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농구, ‘돌풍의 추억’ 
상대 수비를 일시에 허무는 환상적인 어시스트, 가슴을 통쾌하게 만드는 덩크슛, 신비할 정도로 부드럽게 림에 꽂히는 3점슛 등 관중을 흥분과 열광의 세계로 이끄는 스포츠 농구. 예전부터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은 농구는 1997년 지역연고제, 외국인 선수 도입 등을 골자로 한 프로농구가 공식 출범하면서부터 보다 광범위한 인기를 확보하며 대중적인 스포츠로 발전하였다. 프로농구 출범으로 라이벌 종목인 배구가 프로 전향을 검토할 정도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프로농구와 대학농구

성공적인 변신으로 평가받으며 지금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프로농구. 하지만 이 프로농구로 인해 오히려 상당한 손실을 입은 경우도 있으니 대학농구, 바로 그들이다.

우리나라 농구는 83년 점보시리즈라는 ‘농구대잔치’가 막을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섰고 농구대잔치 시절만 해도 대학팀은 실업팀과 함께 대회에 출전, 대중 앞에서 기량을 겨룰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대학팀은 아마추어로 철저히 구분돼 프로경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아마추어간 경기에만 출전하도록 제한받아 프로팀들이 날이 갈수록 인기를 얻는 방면 대학팀들은 점점 더 소외당하는 결과가 초래됐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소위 ‘대학농구 돌풍’이란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한 수 위의 기량을 가진 선배(실업팀)들을 상대로 후배(대학팀)들이 당당히 코트에 맞섰던 때를.

당시 대학농구 돌풍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돌풍의 원조라고 불리는 중앙대는 허재, 강동희, 김유택 등을 중심으로 85~86시즌, 86~87시즌에 결승에 오르며 이충희가 이끌던 실업최강 현대전자와 패권을 다퉈 아깝게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신화를 남긴 ‘독수리5형제’

이후 대학농구는 잠시 주춤하다가 94년 3월 6일 제11회 농구대잔치에서 최다 연승타이기록 20연승, 1게임 최다 3점슛(14개), 1게임 최다 슛블로킹과 리바운드 등 각종 신기록들이 세워지는 가운데 연세대가 대학팀 최초로 실업팀인 상무를 누르고 우승하면서부터 다시 돌풍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당시 연세대는 독수리 5형제라고 불린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김훈, 우지원 등을 중심으로 쟁쟁한 실업팀들을 차례로 정복, 실업팀의 독무대였던 농구대잔치에서 대학팀의 존재를 분명히 각인시키는 금자탑을 달성했다. 이러한 돌풍은 꾸준히 상승세를 타 다음해인 94~95시즌에 기아자동차에 아깝게 우승을 넘긴 것을 제외하고 연세대가 95∼96시즌, 96∼97시즌에서 우승했고 고려대와 중앙대도 꾸준히 상위권에 드는 위업을 달성했다.

당시 대학농구의 돌풍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프로농구 출범이 대학팀의 출전을 막기 위한 의도적 전략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또한 영원한 오빠 이상민 같은 대형스타가 등장한 것은 물론 서장훈, 현주엽 등 대형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프로팀의 스카우트 경쟁은 거의 전쟁이라 부를 정도였다.

프로농구로 인해 팬들의 시선에서 많이 벗어난 대학농구. 그들은 오늘도 회상한다. 과거 그 화려했던 돌풍의 추억을.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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