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 31일, 대통령 자문기관인 교육개혁위원회(이하 교개위)는 문민정부의 교육개혁 총론을 담은 청사진 ‘5·31교육개혁안’을 발표했다.
발표 당시 교개위 이명현 상임위원은 이 교육개혁안을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라고 표현했다. 그럴 정도로 교육개혁안에는 교개위가 교육전반의 기본틀에 대한 대수술을 단행하면서 고심한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있었다.
본고사의 폐지
수험생과 학부모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확정된 대학입시의 자율화, 고교내신제의 폐지와 종합생활기록부제 도입, 고교평준화의 부분해제로 집약되는 초중고교 신입생 선발방식 개선 등은 대표적 예였다. 줄 세우기식 교육을 지양하고, 학습자의 학습 욕구에 따른 선택과 창의적 교육을 중시하며, 과열 과외를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복안이었다.
개혁안에 따르면 우선 과열과외 완화를 위해 국공립대의 경우 97학년도부터 본고사를 법령으로 폐지하는 한편 종합생활기록부를 반드시 전형자료로 사용토록 하고 수능 논술 면접 실기는 선택자료로 활용하게 했다.
특히 수험생의 실질적 복수지원 기회를 허용, 대학은 1년 내내 학생을 모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97학년도부터 비수도권 소재 전문대를 시작으로 대학정원을 자율화하고 시설 등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다양한 대학 등을 자유롭게 설립하는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할 수 있게 했다.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교육개혁안의 기본방향이 전반적으로 대학자율의 폭을 넓히고 개방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학부모 학생 교사 교수 교육 관련단체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급자 위주, 규제 일변도의 획일화된 교육체제에서 학습자 위주, 자율화를 기초로 한 다양화, 정보화시대에 맞는 교육체제로 전환할 것을 표방했다는 데서 일단 미래지향적인 성격이 강했으며, 이는 불가피한 대세라는 공감대도 형성돼 있었던 까닭이다.
교육재정 확보는 공염불
하지만 교개위 스스로 “개혁의 성패를 가늠하는 관건”이란 표현을 쓴 ‘교육재정의 GNP 대비 5% 확충 방안’에 대한 논의가 결국 같은해 9월 이후로 미뤄진채 개혁안이 발표되면서 ‘미완의 개혁’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당시 재정경제원도 교육부의 재정 확보안에 대해 난색을 표해 이러한 우려를 키웠다. 특히 사립학교법의 개정을 수반하는 ‘사학의 자율과 책임성 제고’ 부분 역시 하반기 과제로 연기되면서 정부의 책임은 제껴놓은 채 대학의 경쟁만을 종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단체들이 교개위의 교육개혁안 발표직후 “정부의 교육개혁안은 여러 가지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전제가 돼야 할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구체적 교육재정 확보방안 제시 △사립학교법 개정 등 법 제도 마련 △교수협의회의 공식적 의사결정기구화 등을 촉구한 것도 이런 우려와 무관치 않다.
5·31교육개혁안은 과거 정부의 교육개혁이 입시제도의 개선 등 대증적·단편적 수준의 방안 마련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교육틀의 총체적 변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 특히 국가가 교육과정 운영을 주도해온 압축성장 시대의 패러다임을 넘어 교육수요자 위주로 교육체제를 전환하기로 한 점은 눈에 띄는 대목으로, 실제로 여러 긍정적 변화를 몰고 왔다. 그러나 결과론적 평가는 후하지만은 않은 상황. 우선 김영삼 정부 시절 GNP 5% 교육재정 확보 방안이 공염불에 그치면서 대학자율화 정책은 대학별 재정 확보를 위한 무한 경쟁만을 부추기고 ‘대학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97년 3월 발효된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사학재단의 권력을 감시할 알맹이가 빠진 상태로 남았다. 아울러 대학의 설립기준을 사실상 완화한 ‘대학설립 준칙주의’로 인해 대학이 마구잡이로 늘어나면서 2000년대 대입정원 역전현상과 이로 인한 대학의 위기를 자초한 결과를 빚었다는 혹독한 평가도 받고 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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