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교수직으로 돌아왔다. 1990년 8월 덕성여대 당국으로부터 '귀하에 대한 재임용 동의가 부결되었다'는 단 한 줄의 통보로 교수직에서 쫓겨난 뒤 9년만의 일이다.
이러한 엄청난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개강을 사흘 앞두고 쫓겨 나야만 했던 충격, 대학에 대한 절망, 억울함과 비통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나에게 복직은 맺힌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을 넘어 생명을 되찾는 환희가 아닐 수 없다.

부당하게 해직된 교수는 반드시 자신이 연구하고 가르치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다른 대학에 '취직'할 수도 없으려니와, 혹 취직이 된다해도 어찌 온전한 마음의 평화가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덕성여대의 사례 가 해결방식의 전범(典範)이 될 수 있다.

90년 당시 내가 해직되었을 때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은, 학교당국의 조치가 부당하고 학내 민주화 활동을 파괴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나를 복직시키기 위한 싸움에 나섰다. 장기 간의 복직 투쟁은 대학 당국으로부터 '다음 학기 복직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그러나 나는 당시 복직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의 복직을 위해 싸웠던 교수들과 학생들 은 중징계를 당했다. 대학 측과의 '대승적 화합' 동기에서 싸움을 끝낸 후 나의 복직을 기대 하던 교수들과 학생들은 기만당했고 이후 덕성여대는 박원국 이사장의 횡포가 더욱 심해져'동토의 왕국'이 되어갔다.

90년의 복직 투쟁이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져 갈 무렵인 1997년 3월 박원국 씨는 사학과 한 상권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한 교수는 90년에 나의 복직을 위해 앞장서는 등 덕성 여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였을 뿐 아니라 사학계에서도 고매한 인격과 탁월한 학문적 업적 을 인정받는 훌륭한 학자였다. 이러한 분이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는 것은 당시 덕성여대의 반교육적 실상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사학계, 학술단체협의회, 민주 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참여연대 등 여러 교육 및 사회 민주화 단체가 박원국 씨의 비행을 규탄하였고, 이어 덕성여대 교수협의회가 한 교수의 복직 투쟁을 전개하였다. 2년이 넘게 지속된 한 교수 복직투쟁은 결국 박원국 씨를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게 하였고, 1999년 2월 이문영 이사장을 비롯한 새 이사진이 들어옴에 따라 마무리되었다. 새 이사회는 이문영 이 사장의 대학 운영 정상화 및 민주적 개혁의 철학과 원칙 아래, 3월 한상권 교수를 복직시키 고 '교수평의회'와 같은 획기적 제도를 도입하여 대학 정상화와 민주화를 이끌었다. 나의 복 직이 이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요컨대 덕성여대 사례는 대학 민주화를 추구하는 학내외의 여러 세력들이 뭉쳐 정의감과 대의를 잃지 않고 투명하고 끈질지게 싸우고 협조할 때에만 부당한 해직에 대한 복직조치가 가능해짐을 말해준다. 나의 복직 뒤에는 엄혹한 교육의 현장에서 대학다운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위험과 위협을 싸워 이겨낸 한상권 교수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및 동료 교수 들, 학생들과 사회 단체들, 그리고 개혁적 이사회의 후원이 있었다. 나의 복직의 영광을 이 분들에게 돌린다. 이 분들이 있었기에 덕성여대는 '양심과 희망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