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간에서 벌어지는 토론의 문화보다는 공작정치에 익숙한 사회구조가 불신과 공멸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많은 이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사찰이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재단의 비리와 전횡으로 몸살을 앓았던 대학에는 어김없이 소속 교수들과 직원들에 대한 감시와 사찰이 이뤄졌었다. 지금도 일부 대학의 몇몇 교수들은 자신의 연구실이 도청 당하고 있다는 위기감 속에 하루하루를보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대학사찰 사건은 과거의 그것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다. 설자리를 잃어 가는 부패한 재단의 마지막 몸부림에서 비롯된 어설픈 공작과는 달리 거대 자본력을 갖 춘 집단에 의해 매우 치밀하고도 파상적인 사찰을 이뤄졌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들이 여러곳 에서 드러난다.

재벌의 대학소유에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던 이들의 우려가 현실로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학문을 사고 파는 전입가경의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단순히 이익의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재벌에게 생선을 맡기고 학문의 자유와 운영의 민주성을 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가 하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하물며 눈에 흙이 들어 가기 전에 노조는 안 된다는 불멸의 교훈을 가슴에 안고 사는 이들 에게 교권 확립과 노조의 권익, 학생의 요구는 공작과 탄압으로 싹을 없애야 하는 절대절명 의 과제인 것이다.

어쩌면 재벌의 대학소유를 묵인한 것부터가 문제의 씨앗이었는지 모른다. 대학이 자본의 힘에 의존하는 그 순간부터 학문의 자유는 저당 잡히게 된다는 것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은 제법 크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스러운 삶, 억압과 탄압으로부터 자유스러운 삶을 살고자 한다. 이는 함 께 만들어 나가는 공동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지, 일반의 시혜와 일방의 투쟁으로만 가능 한 것이 아니다.

21세기, 모두가 승리해야 하는 새천년에 아직도 20세기의 향수에 젖어서 살아 꿈틀거리는 거대한 대학이라는 생명체를 사찰과 공작, 억압과 돈으로 제 욕심을 차리려하는 일부 재벌 과 악덕 사학 모리배들은 이번 사태를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차제에 재벌이나 악던 사학집단의 대학통제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강구되기를 바란다. 정의는 언젠가 승리하는 것이 아닌 지금 바로 승리 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 기 때문이다.

- 이주엽(상지대 기획예산과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