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서울대의 재임용 기준은 '기간 내 200%의 연구업적물'로 돼 있는데, 이제까지 이 를 만족시키지 못해 교수직에서 쫓겨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말하자면 그 첫 사례가 김민수 교수인데, 정작 김 교수는 연구기간 내에 저서 한 권(그것도 우수저서 상을 받은 저서)에다가 7편의 정식 학술논문을 갖추고 있었고 그 중 논문 한편은 관련 연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수작이라고 평가한 데다가 외국의 권위있 는 학술지에 게재됐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도대체 김교수가 '연구실적 미달'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 96년 교내 심포지움에서 미대 초창기 교수들의 친일행적을 거론해서원로교수들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신임교수가 겁도 없이 그런 말을 해댔으니 학장실로 불려가서 해당 부분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받게 됐고, 분기탱천한 젊은교수가 절대 그렇게는 못하겠노라고 뻗댄 것이 그다음이며, 해당 논문이 미술대학 학술지에 실리지 못하게 되고 대학원생들을 배정받지 못하는 식의 압력을 받게 된 것이 그 다음 수순이다.

이상이 김 교수측의 설명이다. 한편 디자인학부와 서울대 본부 측의 설명은, 애초에 그런 사항은 전혀 무관하며 김 교수의 논문을 심사해보니 전부 기준 미달이라 애석하게 도 탈락됐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가게 됐는데, 우선 이 사실 자체가 정말로 부끄럽기 짝이 없 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아한 학자 내지 석학,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이라고 자 부하는 서울대 교수들이 자기 집안일 하나 제대로 단속을 못해 법원에 판단을 맡기고2년 가까운 세월동안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니.

그나마 1심에서 김민수 교수의 승소 판결이 나왔을 때 이제는 이 사태가 해결되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곧바로 2심에 항소하더니, 최근에는 디자인학부 교수들이 "김 교수는 '베껴쓰기'를 밥먹듯이 하는 연구자이고 선배교수의 대화를 녹취해서 법원에 넘기려 하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서울대 교수들과 그 과의학부모들게 발송했다.

우선 대학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일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어쨌든 나에게는 "'개인'은 자유로우나 '조직'은 매사에 부자유하다"는 편지의 한 표현이 뭔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하여튼 그 내용인즉 김 교수가 학문연구자로서의 자세와 기본윤리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일찍이 알고 있었으나 '김 교수의 장래를 고려해서' 그동안 공개하지 못하고 있었다가 이제 만천하에 공개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인품이 훌륭한지 나쁜지는 난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분명히 말하 고 싶은 점은 어느 교수의 재임용과 관련해서 그 사람의 인품이 어떻다는 소문이 나돌고 거기에 판단을 의탁한다는 것은 명색이 교수라는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창피한 일 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가 논문을 베껴서 썼는지 아닌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한 젊은 학자의 학문적 생명이 달려있는 이 문제는 편지 한 통으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그래서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답게 공청회 방식으로 공개리에 논의하자는 것이다.

김 교수의 논문에 대해서 어떤 근거에 의해 수준미달이라는 평가를 내렸는지 당당하게 나서서 비판해보라. 그럴 자신이 없으면서 '조직' 운운하는 편지나 보내고 있으면 정말 로 이상한 '조직'이 되고 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경철 교수(서울대 서양사)